- 지루함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
우리 손에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세상은 지루할 틈이 많았다. 그 지루한 시간을 견디며 우리는 수만 가지 감정을 떠올렸고, 홀로 상상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펼쳤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찰나의 지루함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와이파이 연결이 조금만 느려도 짜증이 나며, 콘텐츠가 즉각적인 만족을 주지 못하면 곧바로 채널을 돌려버린다.
즉각적인 만족과 빠른 보상의 환경 속에서 인간은 뇌의 스위치를 끄고 AI가 제시하는 편리한 답을 그대로 수행하는 존재, 즉 ‘호모 브레인오프(Homo Brain-off)’가 되어가고 있다. 시시콜콜한 고민과 깊은 사유까지 AI에 의존하는 순간이 늘어나면서 우리는 기다리며 기대하는 마음과 참고 견뎌내는 힘을 잃었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줄어들면서, 내면에서 싹트던 지혜와 창의성마저 퇴색되는 위험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참고 견디는 일은 괴로운 경험일 수 있지만, AI는 알려주지 못하는 ‘인생의 기술’이기도 하다. 지루함은 단지 비생산적인 시간이 아니라, 내면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사유의 근육을 키우는 중요한 조건이다. 이번 방송에서는 기술이 허락하지 않는 멈춤 속에서 ‘지루함의 기능’을 재발견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와 효율이 아닐지 모른다는 고민을 함께 나누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