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최초의 누드 퍼포먼스 1세대 전위 예술가, 정강자
1968년, 세 명의 청년 작가들이 한강 변에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들어갔다. 그들은 목만 내놓은 채 그곳에 묻혀 관객들에게 물세례를 받았다. 무덤에서 나온 그들은 비닐에 흰 페인트로 예술을 탄압한 기성세대를 고발하는 글을 쓰고, 그것을 태우는 화형식을 했다. 당시 터졌던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 심사 비리를 고발, 비난하는 퍼포먼스 '한강변의 타살'이다.
1960~1970년, 억압의 시대에 여성을 넘어 인간의 해방과 자유를 꿈꿨던 정강자의 작품들은 여전히 우리 시대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여성의 입술을 거대화한 조형 작품 ‘키스 미’(1967), 억눌리는 존재인 여성을 표현한 ‘억누르고’(1968) 그리고 같은 해 열렸던 제1회 국전에서 누드화가 풍기 문란으로 철거된 일을 풍자하기 위해 기획된 ‘투명 풍선과 누드’가 있다. 최초의 누드 퍼포먼스는 ‘벗는 예술론’이라는 당시 신문 기사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선정적’, ‘퇴폐적’이라는 단어에 갇혀 왜곡되고 저평가됐다. 1970년대에 열렸던 첫 개인전 '무체전(無體展)'은 전위 예술의 기본 정신이 '무체'에 있다고 본 그의 철학이 깃든 전시로, 신체보다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개막과 동시에 강제 철거되었다. 군사정권의 억압 때문이었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작가였음에도 실험미술 기여도가 연구되지 않았고, 여성 신체를 차용한 작업은 선정적인 시각을 감내하는 등 이중 소외에 시달렸다”라는 평처럼 정강자의 실험미술은 오랜 기간 소외됐다. 하지만 그는 여성의 몸을 당당하게 앞세우며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해방을 꿈꾸며 환상의 세계를 그려낸 한국 실험 미술의 선구자, 정강자의 작품 세계를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