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변화를 선도하는 EBS
프로그램의 최신소식에서 교육 채널 소식까지 EBS의 보도자료를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게시판 보기 페이지입니다.
제목    시대의 초상 - 문정현, 가장 낮은 곳에서 평화를 말하다  
작성일 2007-03-05 조회수 18151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인혁당 사건, 임수경․문규현 방북의 산증인
문정현 신부를 만나다 EBS 『시대의 초상』‘문정현, 가장 낮은 곳에서 평화를 말하다’ 인혁당 사건, 임수경․문규현 방북 등 역사적 사건에 담긴 그의 신념 의연하고 당당했던 어머니, 동생 방북 소식엔 TV 붙들고 통곡해
방송시간 : 3월 6일(화) 밤 10시 50분 ~ 11시 40분
문의 : 김양래 PD (016-233-7834)
○ ‘길 위의 신부’라 불리며 지난해 사제서품 40년을 맞은 문정현 신부. 인터뷰 다큐멘터리 EBS 『시대의 초상』의 두 번째 주인공이다. 3월 5일 방송 예정인 ‘문정현 목사, 가장 낮은 곳에서 평화를 말하다’ 편에서 민주화, 통일, 자주 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문정현 신부의 육성을 통해 ‘인혁당 사건’, ‘임수경․문규현 방북’ 등 역사적 사건을 회고하고 그의 신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 인생의 마지막 싸움이라는 심정으로...” ○ 최근 2년 동안 문정현 신부는 ‘평택 대추리’에서 살았다. 문 신부는 “주민 전원이 이주에 합의했다고는 하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며 정부의 합의사항이 성실히 이행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는 군산 미군기지문제를 계기로 ‘불평등한 SOFA개정 국민행동’을 만들어 자주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주둔군 지원비를 지불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항기 몇 편 띄우기 위해 활주로 몇 번 사용한다고 사용료에 유지보수비를 또 낸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고 1997년의 ‘군산미군기지 민항기 활주로 사용료 인상안 반대 운동’을 회고한 문 신부는 이번 평택미군기지확장 이전 반대 싸움이 “내 인생의 마지막 싸움이 아닐까하는 심정으로 온 몸을 다 해 투쟁했다”고 말했다. “꼭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와라”... 동생을 사지로 보낸 눈물겨운 선택 ○ 문정현 신부의 통일 운동엔 동생 문규현 신부가 늘 함께했다. 1989년 임수경씨와 함께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문규현 신부는 당시 형인 문정현 신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남한으로 돌아오는 방법에 대해 의논했고, 문정현 신부는 “군사분계선을 넘어라. 삼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당시의 방북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지만 문정현 신부는 “48년 김구 선생에 이어 두 번째로 임수경과 문규현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으로 온 것은 통일 역사의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앞으로 남북은 교류와 대화를 통해 통일의 길로 들어서야 할 것”이라고 말하며 동생을 사지로 보냈던 당시의 눈물겨운 선택을 회고했다. “진실은 영원히 덮어둘 수 없는 것” ○ 문 신부는 이어 최근 재심을 통해 32년 만에 무죄가 밝혀진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국제변호사와 BBC 방송국 PD의 통역인 자격으로 대법정에 입장이 가능했던 문 신부는 당시의 상황을 “처절했다”라고 표현했다. 문 신부는 판결 하루만에 사형이 집행된 희생자의 시신의 화장을 저지하려다 다리가 골절돼 현재도 목발을 짚고 다닌다. 그리고 이듬해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명동성당 구국 선언문’으로 구속돼 5년형을 구형받기도 했다. 문정현 신부는 “진실을 영원히 덮어둘 수 없는 것이며 지진이 일어나서라도 드러나는 것이다. 30년 만에 진실이 밝혀졌다고는 하나 죽은 자들을 살릴 수 없으니 독재의 탄압은 무서운 것이며, 그래서 독재 정권은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라고 정리했다. 셋째 아들 방북 소식에 오열... 평생 단 한 번 본 '진짜 어머니‘의 모습 ○ 7남매 중 두 형제를 사제로, 한 명의 딸을 수녀로 길러낸 어머니에 대해서는 “강하고 의연하셨지만, 동생의 방북 소식을 듣고는 끝내 어머니의 본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고 회고했다. 1976년 둘째 아들 문정현 신부가 바로 옆에서 잡혀갈 때에도, 철창 안의 아들을 면회할 때에도 “김대건 신부님처럼 되어야 한다”며 아들을 위로하셨던 강건한 어머니는, 셋째 아들의 방북 소식에 TV를 끌어안고 오열했다고 한다. “그 때 진짜 엄마의 모습을 딱 한 번 보았다”고 말하는 문 신부는 눈물을 감추고, 당당하게 아들의 버팀목이 되었던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 하더라도 역사에는 후퇴가 없다” ○ 86년 익산의 장애 아이들을 돌보는 ‘작은 자매의 집’을 설립, 지금도 50여 장애우들과 함께 살고 있는 문정현 신부는 “인권은 민주화 없이 보장될 수 없고, 민주화와 인권은 통일을 지향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이 민족의 자주를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항상 민중의 옆에서 사제의 길을 걸어온 그는 확신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하더라도 역사에는 후퇴가 없다‘고... 그리고 그 길이 ’가야할 길’이라 믿기에 그는 오늘도 가장 낮은 곳에서 평화를 외치고 있다.
이전글
EBS 특집 다큐멘터리<영어강국 코리아 만들기> 2부작
다음글
40년간 딸에게 밥 씹어먹인 '아비 새'의 절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