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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큐프라임 4부작 ‘하늘의 땅, 몽골’  
작성일 2008-02-28 조회수 16161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몽골 그곳엔 지금 무슨일이? 다큐프라임 4부작 ‘하늘의 땅, 몽골’ 오는 3월 3일부터 방송 한국 방송 사상 최초로 공개되는 몽골의 대서사시가 ‘토올’ 심층 조명, 몽골 야탁을 부활시킨 북한 가야금 연주자 김종암의 자취 최초 공개, 샤머니즘이 살아 있는 몽골인의 삶과 시장경제 도입으로 인한 변화상 조명 제 1부 초원의 전설, 토올 : 2008년 3월 3일(월) 밤 11:10~12:00 제 2부 자연과 인간의 매개자, 버 : 2008년 3월 4일(화) 밤 11:10~12:00 제 3부 아름다운 동행, 야탁과 가야금 : 2008년 3월 5일(수) 밤 11:10~12:00 제 4부 꿈꾸는 초원, 바다흐 가족의 외출 : 2008년 3월 6일(목) 밤 11:10~12:00 문의 : 황인수 제작위원 (1,2부 제작, 017-341-4532), 이재열 PD (3,4부 제작, 010-2726-6890) 갈수록 협력관계가 확대되어 가는 몽골의 전통 문화와 삶, 한국과의 교류 등 변화상을 조명하는 4부작 ‘다큐프라임-하늘의 땅, 몽골’이 EBS-TV를 통해 오는 3월 3일부터 방송된다. 이번 시리즈는 EBS와 KBI가 공동기획하고 문화관광부가 제작을 지원한 프로그램으로, 한국과 몽골의 문화적 이해를 도모하고, 한국의 이미지 고양을 통해 한류의 지속 확산을 도모하기 위해 몽골 UBS, Arena Studio와 공동으로 제작했다. 몽골인은 한국을 솔롱고스, 몽골어로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르며 형제국이라고 여긴다. 최근에는 아시아 각처로 전해진 한류(韓流)의 흐름 속에서 한국을 더욱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 많은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배우고, 한국에서 일하기를 꿈꾸며 한국을 동경하는 것이다. 일찍이 몽골반점, 우랄-알타이 어족 등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고, 칭기즈칸이 세운 원 제국에서는 한반도 문화를 ‘고려양(高麗樣)’이라 해 칭송했을 만큼 한국과 몽골은 역사적으로도 여러 문화적 연대감을 갖고 있다. 오늘날 몽골은 한반도의 7배에 달할 만큼 국토가 넓고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자원이 풍부하지만 인구는 283만 명에 불과한 나라로 많은 성장 가능성을 가진 나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과 몽골 양국이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는 늘어나는 경제 교류와 함께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4부작으로 제작된 본 프로그램에서는 몽골의 전통문화와 삶, 한국과의 교류와 변화들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한국과 몽골 양국의 한층 발전된 미래를 제시해본다. [프로그램 주요 내용] <한·몽 공동제작> 하늘의 땅, 몽골 - 제 1부 초원의 전설, 토올 2008년 3월 3일(월) 저녁 11시 10분 한국 방송 사상 최초로 공개되는 몽골의 대서사시가, 토올 토올은 문자가 없던 때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오랑카이 족의 대장편 서사시가이다. 몽골의 전설 속 영웅들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노래로 가사에는 몽골인들의 삶과 역사가 그대로 살아 있다. 토올을 전문적으로 부르는 토올치만이 부를 수 있는 토올. 7만 줄(약 A4 3500페이지 분량)이 넘는 가사를 전부 외워서 한 사람이 3~4일 동안 부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토올치들은 이렇게 긴 서사시가를 책도 없이 스승으로부터 전해들은 것만으로 암기하여 부를 수 있었을까? 토올은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문화유산이고, 몽골 정부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기록이 없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기록도 없이 구전으로 전승해온 천 년이 넘는 역사의 비밀, 대서사시가 토올을 한국 방송 사상 최초로 촬영, 그 비밀을 파헤쳐본다. 몽골 유일의 토올 전승 집안, 발땅더리찌의 가계 토올은 오늘날 몽골에서도 한정된 지역에만 남아 서몽골 알타이 산맥 주변의 오랑카이 족을 중심으로 이어져왔다. 단 하나의 기록도 없이 순전히 구전만으로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진 토올은 그 자체로 신비감을 갖고 있다. 현재는 서몽골에서도 가계로 토올을 전수받은 이는 발땅더리찌가 유일하다. 목을 틔우기 위해 피가 나도록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했던 토올치들의 고된 훈련방법은 이제 그의 조카 칭돌락에게로 이어졌다. 몽골 최고 토올치였던 아버지와 큰아버지에게서 토올을 전수받은 발땅더리찌가 아버지 아위르메드의 또 다른 제자 세세르와 함께 토올 연행을 떠난다. 지난 6월 세상을 떠난 토올치이자 큰아버지 오르트나승의 영전에 인사를 올리고 오랑카이 족의 고향 알타이 산맥 깊숙이 토올의 본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이 여정을 따라 오랑카이 족 토올치 집안의 토올 전승기를 추적해본다. 오랑카이 족 토올치들의 고향, 알타이 산맥의 뭉크하이르캉 발땅더리찌와 아버지 아위르메드의 또 다른 제자 세세르와 함께 뭉크하이르캉으로 긴 여정을 시작한다. 오랑카이 족의 “영원한 산”으로 불리는 뭉크하이르캉은 4,204m에 달하며 만년설에 뒤덮여 있어서 풍광만으로도 신성한 느낌을 준다. 알타이 산맥에 있는 13명의 신에게 허락을 구하고, 뭉크하이르캉의 영험한 기운을 받아 정성껏 토올을 부르는 토올치들. 32년 만에 고향을 찾은 세세르와 대대로 토올을 이어온 발땅더리찌의 정성이 한데 어우러져 만년설이 펼쳐진 대자연을 감동시킨다. 이들이 토올을 부르자, 알타이의 산신들이 화답이라도 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몽골에서 비는, 건조하고 가문 대지를 적시는 길조로 통한다.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대대로 오랑카이 족의 역사와 전설을 전해주는 교과서와 같은 토올, 서몽골 알타이 산맥에 올려퍼지는 토올은 이들뿐만 인류 모두에게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한·몽 공동제작> 하늘의 땅, 몽골 - 제 2부 자연과 인간의 매개자, 버 2008년 3월 4일(화) 저녁 11시 10분 시장경제 도입으로 변화하는 몽골, 샤머니즘이 살아 있는 몽골인의 삶 몽골은 러시아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나라였다. 그러나 1990년대 사회주의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선택한 몽골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새로운 유행과 고유의 전통이 함께 하는 역동적인 나라로 변했다. 울란바토르에 속속 들어서는 고층 건물군 사이에서 일요일마다 벌어지는 굿판. 날로 변화하는 몽골에서도 몽골인의 삶 속에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샤머니즘이 남아 있다. 몽골어로 남자 무당을 버, 여자 무당을 오트강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많은 울란바토르 사람들은 아이가 아플 때도, 술을 끊으려고 할 때도, 먼 길을 떠날 때도 이들을 찾아 조언을 구한다. 변화하는 몽골 속에서 버의 존재는 어떤 의미인지, 몽골 사람들에게 버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짚어본다. 몽골 샤머니즘의 고향, 진정한 버를 만나는 홉스굴로의 여정 몽골인들은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도 버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칭기즈칸과 늘 함께 다녔다는 다르하트 족 버의 고향 홉스굴 지역은 지금도 진정한 버의 고향으로 여겨지며 신성시되는 땅이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한다 하여 샤머니즘을 금지했고, 많은 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갔던 곳도 홉스굴이다. 보다 자연에 가까운 몽골 샤머니즘의 원류를 찾아 제작팀은 울란바토르를 떠나 홉스굴로 출발하였다. 홉스굴 지역에서 만난 여자 무당 유라는 간호사로 일하다 결국 오트강이 되어 마을 사람들을 돕고 있다. 아픈 아이 때문에 찾아온 이웃을 위해 영혼의 힘을 빌어 위로해주고, 해결책을 알려준다. 문명과는 거리가 먼 외진 마을에서 몸이 아파도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오트강 유라의 존재는 커다란 마음의 위안이자 의지이다. 세계 최초로 카메라 앞에 선 차탄 무당, 거스타 주술적 성격이 강한 원시 종교의 한 단계로 여겨지는 샤머니즘. 현대인의 삶 속에서도 이어지는 몽골 샤머니즘은 세계적으로도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이었다. 지금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원시적인 형태의 샤머니즘이 남아 있는 곳을 찾아, 제작진은 사진 한 장과, 마을 사람의 소개장만 갖고 러시아 국경과 맞닿은 차탄 마을, 시식트로 향했다. 버 거스타를 만나기 위해서다. 자동차 대신 말을 타고, 꼬박 하루 동안 험한 산을 몇 고비 넘어 겨우 만났지만, 방송 촬영을 완강히 거부하는 거스타. 방송 촬영을 위해 거짓으로 굿을 할 수 없다는 거스타를 설득해 제작진 중 일부의 청을 들어주기 위한 굿을 부탁했다. 밤 12시를 기해 진행된 굿은 자연 속에서 원시의 힘을 담고 있는 몽골 샤머니즘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영혼과의 만남을 위해 빛을 경계하는 거스타 때문에 쉽지는 않았지만, 검은 종교라 불리는 몽골 샤머니즘의 실체로서 버 거스타의 모습을 세계 최초로 방송에서 공개한다. <한·몽 공동제작> 하늘의 땅, 몽골 - 제 3부 아름다운 동행, 야탁과 가야금 2008년 3월 5일(수) 저녁 11시 10분 너무도 닮은 두 악기, 야탁과 가야금 야탁은 몽골 전통 악기이다. 그런데 이 악기의 형태나 연주법은 우리의 악기 가야금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게다가 몽골의 야탁 연주자들이라면 누구나 우리 민요 “아리랑,” “도라지 타령”등을 한국의 가야금 연주자들 못지않게 능숙하게 연주한다. 최초 공개, 몽골 야탁을 부활시킨 북한 가야금 연주자 김종암의 자취 가야금과 야탁, 이 두 악기의 남다른 인연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 북한 가야금 연주자 김종암이 몽골에 와 제자들을 지도함으로써, 한때 외세의 압력 속에 맥이 끊겨가던 몽골의 야탁을 부활시킨 것이다. 야탁은 13세기 칭기즈칸 시대 이후 궁중과 사원의 행사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던 몽골의 대표적인 전통악기였다. 그러나 1920년대 소련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전통 문화와 불교가 탄압받으면서 그 맥이 끊겨질 위기에 있었다. 김종암은 1961년 다섯 대의 북한 가야금을 가지고 몽골에 와 1967년까지 헉찜 부찍 음악 무용학교에서 16명의 제자들을 지도했다. 이후 이 제자들은 몽골의 대표적인 야탁 연주자가 되어 야탁이라는 잊혀져가던 전통악기를 몽골 국민 속에 되살려냈다. 이들을 통해 김종암의 가야금 주법은 야탁의 기본 주법으로 다음 세대 연주자에게 계속 전해지고 있다. 김종암의 제자들은 지금도 스승의 그 열정, 자상함, 헌신을 눈물로 기억하며, 스승이 가르쳐 준 조선 노래를 한국말로 부르곤 한다. 아름다운 동행을 꿈꾸는 가야금과 야탁 한편 조선 스승과 몽골 제자들의 아름다운 인연을 간직한 야탁은 한국과 몽골의 교류 확대로 40여 년 만에 다시 한국 가야금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몽골의 젊은 야탁 연주자들은 한국 가야금에서 깊은 울림을 느낀다. 한국의 연주자들은 몽골 야탁에서 여성적인 화려함을 느낀다. 40여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그 다름. 그 다름이 어울려 만들어갈 가야금과 야탁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몽골 전통악기 야탁과 가야금의 소통을 통해, 한민족과 몽골의 아름다운 우정을 조명해본다. <한·몽 공동제작> 하늘의 땅, 몽골-제 4부 꿈꾸는 초원, 바다흐 가족의 외출 2008년 3월 6일(목) 저녁 11시 10분 변화 앞에 선 칭기즈칸의 후예들 지구상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유목 국가 몽골. 그러나 1990년대 사회주의 몰락 이후 시작된 개혁개방 정책과 2000년대 들어 물밀듯이 밀려드는 자동차 핸드폰, 텔레비전 등 현대 문물의 영향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남한의 17배에 이르는 광활한 초원을 자유롭게 떠돌며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던 250여만 명의 몽골인 가운데 절반이 초원을 떠나 도시로 갔고, 전기와 도로, 텔레비전과 핸드폰은 이 시간에도 몽골 초원 속으로 외부세계의 바람을 실어 나르며, 그들을 유혹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생활방식 대신, 짧은 시간에 급속한 변화를 겪은 유목민들은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고비사막에 사는 유목민 가족을 한 달 간 밀착취재, 21세기를 사는 몽골인들의 변화와 그 속에서 꿈꾸는 미래를 조명해본다. 고비 사막의 바다흐 가족, 7명 중 4명이 게르를 떠나다 동고비사막에 사는 유목민 바다흐 씨 가족은 가축을 이끌고 1년에 몇 번씩 게르를 옮기며 사는 전형적인 유목민 가족이다. 하지만 7명의 가족 중 자식 4명이 집을 떠나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큰 딸은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 유학을 꿈꾸고 있다. 9년간의 의무교육으로 집을 떠나 있는 두 아이는 기숙사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더 넓은 세계를 꿈꾼다. 작은 아들 이시카의 꿈은 건축가다. 스스로 유목민의 길을 선택한 큰 아들 역시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유목민을 꿈꾸며 자동차 학원에 다니기 위해 인근 도시로 갔다. 아버지 바다흐씨 역시 이제 변화는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은 아들을 몽골 최고의 대학인 국립대학에 보내고 싶은 꿈을 갖고 있는 바다흐 씨. 극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아버지의 꿈, 그러나 이것은 바다흐 씨만의 특수한 예가 아니다. 몽골 유목민들, 교육에서 길을 찾다 동고비 사막 한가운데 있는 작은 마을에 9년제 의무교육 기관인 초중등학교가 있다. 바다흐 씨의 두 아이가 현재 다니고 있는 이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유목민 자녀들이다. 그런데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보통이 아니다. 3년 전 이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텔레비전이 등장한 이후, 학부모들은 가축을 많이 갖는 것보다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더 유망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육 환경이 비교적 좋은 이 학교에 자식을 보내기 위해 게르를 싸들고 학교 옆으로 이사를 오는가하면, 평생 살던 초원을 버리고 손주 뒷바라지를 위해 학교옆 작은 집에 갇혀 지내는 조부모들까지 생겨났다. 교육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는 몽골인들의 변화상을 짚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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