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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b>『세계의 명화-쿠바영화 특별전』환상적 리얼리즘의 세계</b>  
작성일 2005-03-03 조회수 26374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세계의 명화-쿠바영화 특별전』 환상적 리얼리즘의 세계
미하엘 칼라토조프, 움베르토 솔라스 등 거장 감독의 영화를 통해 쿠바 영화 45년의 역사를 압축해 전한다.
방송일시 : 2005년 3월 5일부터 매주 토요일 밤 11시 45분 ~
우리말연출 : 리플레이 프로덕션 변광호 PD (542-9596, 011-389-1657)
EBS ‘세계의 명화’가 3월 프로그램으로 준비한 영화들은 바로 쿠바 영화들이다. 쿠바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최초로 국가적인 규모의 새로운 영화문화를 보여준 나라다. 1959년 쿠바혁명 이후 1961년 탄생한 쿠바영화 예술산업 진흥원(Cuban Institute of Film Art and Industry: ICAIC)을 통해 한때 일년에 150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했던 라틴아메리카 최대 영화의 나라였다. 쿠바에서 본격적인 영화 제작이 이뤄진 건 ICAIC가 만들어지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이탈리아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공부한 네 명의 선구자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 감독이었다. 1960년대 활동했던 많은 쿠바 감독들 가운데 알레아 감독은,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대스승이다.
ICAIC는 쿠바의 영화제작을 늘렸을 뿐 아니라 창작자들에게 스타일상의 도그마를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예술적 성공을 가져오는 데도 도움을 줬다. ICAIC의 창립 멤버였으며 그 기구의 뉴스릴 부문을 이끌었던 산티아고 알바레즈는, 쿠바 영화사상 미학적으로 가장 대담했던 영화감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는 게 그 증거다. 그리고 쿠바는 단지 영화의 제작 편수 뿐 아니라 다양한 시네마테크 운동, 영화교육, 새로운 영화 언어의 창조 등을 통해 ‘혁명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냈다. 당시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불던 ‘제3영화’의 영화들을 접하기 쉽지 않았던 쿠바는 오히려 이탈리아 등 유럽영화의 영향을 더 깊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제3영화에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영화와 많이 다르다. 운동적 성격의 사조로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번 ‘세계의 명화’는 미하엘 칼라토조프의 <내 이름은 쿠바>(1964), 책으로만 접하던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의 <저개발의 기억>(1968), 움베르토 솔라스의 <루시아>(1969) 등의 거장 감독들과 더불어 현대 쿠바 영화의 새로운 이름인 페르난도 페레즈의 <휘파람>(1998) 등을 소개하며 쿠바 영화 45년의 역사를 압축해서 전한다.
◎ <내 이름은 쿠바(Soy Cuba)> 방송일시 : 2005년 3월 5일(토) 밤 11시 45분 -
제 작 : 1964년/쿠바 감 독 : 미하일 칼라토조프 출 연 : 라울 가르시아, 세르지오 코리에리, 살바도르 우드, 호세 갈라도
- 줄거리 <내 이름은 쿠바>는 쿠바의 황량한 정경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반복되는 내레이션과 쿠바 특유의 멜로디가 전편을 감싸기 시작한다. <내 이름은 쿠바>는 미국의 꼭두각시였던 바티스타 정권이 몰락하고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기 전까지 쿠바의 현실을 다큐멘터리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흥겨운 클럽과 인적이 닿지 않는 오지까지 다양한 쿠바의 모습을 스펙터클하게 담아내며 당시 쿠바의 열광적인 정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카스트로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가운데, 수탈의 섬 쿠바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영웅 카스트로를 묘사한다. 마치 완결된 여러 단편들을 합쳐 놓은 듯 진행된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혁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개인들의 삶을 점점 더 깊이 탐구해 나간다. 특히, 한 부패경찰 간부를 암살하려는 어느 청년학생 엔리케(라울 가르시아)와 다양한 정치계급의 삶의 모습을 포착해 나간다. 결국 바티스타 정권에 대항하는 학생, 시민들의 저항 운동이 카스트로로 결집돼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 감독 1903년, 현재는 그루지아 공화국인 소비에트 공화국의 티플리스에서 태어났다. 영화에 입문한 직후 주로 영화제작의 기술적인 편집과 촬영 일을 맡으며 경력을 시작했다.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으며, 특히 다큐멘터리 <스바네테의 소금>(1930)을 통해 독특한 시선과 서정이 넘치는 자기만의 스타일의 보여주었다. 아방가르드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그는 당시 선배 소련 감독들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했다. 당시 티플리스 스튜디오의 관장으로 있었던 그는 1936년 그루지아를 떠났으며, 2차대전 당시 주로 공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이후 장편 극영화 작업을 모색한 그는 <진실한 친구>(1954)로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수상하고, <두루미가 뜰 때면>(1957)으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어서 <부치지 않은 편지>(1959), <내 이름은 쿠바>(1964)를 내놓은 1960년대 초반까지 그의 작가적 전성기는 계속된다. 이후 숀 코네리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주연을 맡은 이탈리아, 미국과의 합작영화 <레드 텐트>(1971)를 유작으로 남겼다. 1973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 <저 개발의 기억(Memorias del subdesarrollo)> 방송일시 : 2005년 3월 12일(토) 밤 11시 45분 -
제 작 : 1968년/쿠바 감 독 :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 출 연 : 세르지오 코리에리, 데이지 그라나도스, 에스린다 누네즈
- 줄거리 <저개발의 기억>은 젊은 부르주아 세르지오(세르지오 코리에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혁명이 몰아닥치고 부모와 아내, 친구들이 혁명을 피해 마이애미로 떠나는 상황에서 그는 쿠바 안에 남기로 결심한다. 혼자가 된 세르지오는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자신의 어린 시절, 가족, 연인 그리고 불행들과 같은 과거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혼자 쿠바에 남은 그는 혁명 중인 사회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한 채, 현실을 관망하면서 차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혁명은 점점 그에게 도전으로 다가선다. 모든 것은 ‘10월 위기’ 동안에 끝나버린다. 그가 회상하는 십대에 경험한 창녀들, 아내, 어머니는 모두 열등한 존재였다. 따라서 이들은 저개발의 상징이다. 다만 독일인의 피가 섞인 한나에게서는 유럽을 발견하고 고도로 개발된 선진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관계 중인 엘레나(데이지 그라나도스)에게 이것을 원하지만, 오히려 참을 수 없는 경멸감과 저개발의 의식만이 또렷해질 뿐이다. 엘레나는 그를 성폭행자로 고소한다. 이렇게 세르지오는 그가 받은 모든 교육과 가치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발견한다.
- 감독 1928년 쿠바 하바나에서 태어났다.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는 중산층의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10대에 마르크스 사상을 접하고 청년공산그룹에 가담한다. 하바나에서 법을 배웠고, 1952년에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떠나 영화를 공부했지만 2년 뒤 바티스타 정권의 억압이 횡행하고 있던 쿠바로 다시 돌아와 사파타 광부들의 이야기를 다룬 16밀리 중편영화 <엘 메가노>(1955) 등 쿠바의 억압적인 상황을 파헤치는 중, 단편 영화들을 만들어 정부와 마찰을 빚게 된다. 이후 그는 카스트로의 혁명운동에 동참하면서 첫 장편 영화를 만든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혁명정부가 지원하는 영화센터인 ICAIC에서 <혁명의 역사>(1961) 3부작을 만들고, <관료주의자의 죽음>(1966)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이 영화는 할리우드 및 세계 걸작 영화를 모조리 패러디하며 혁명 이후에도 잔존하고 있는 관료주의의 병폐를 파헤친 코미디영화였다. 현재 현재 제목만으로도 라틴 아메리카 영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저개발의 기억>(1968)으로 그의 명성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알레아 감독은 쿠바 혁명 정부를 지지했지만 단순하게 혁명찬가를 외친 감독은 아니며, 혁명 이후 쿠바 사회의 잠재된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헤친 영화들을 만들었으며 그 대표작인 바로 <저개발의 기억>이다. 경제난으로 쿠바 전체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시기인 1993년에 그는 병든 노구의 몸으로 외국자본을 유치해 <딸기와 초콜렛> 을 만들어 다시 한번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쿠바의 국부 호세 마르티의 시에 붙인 아름다운 노래의 제목이자 미군에게 강점당한 식민의 땅인 ‘관타나모’의 여인이란 뜻을 갖고 있기도 한 <관타나메라>(1995)를 유작으로 남긴 채 1996년 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 <루시아(Lucia)> 방송일시 : 2005년 3월 19일(토) 밤 11시 45분 -
제 작 : 1969년/쿠바 감 독 : 움베르토 솔라스 출 연 : 라퀠 레부엘타, 에스린다 누네즈, 아델라 레그라
- 줄거리 <루시아>는 1895년, 1953년 그리고 1960년대 각각의 세 시대를 살아가는 루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첫 번째 부분인 1985년은 식민지시대를 살아가는 한 부르주아 여성의 이야기이고, 두 번째 부분인 1953년은 공화정 시대의 예쁜 부르주아 소녀의 이야기를, 마지막 1960년대는 혁명이 일어나던 동시대의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1895년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1부에서 귀족 여인 루시아(라퀠 레부엘타)는, 스페인군의 앞잡이와 사랑에 빠졌다가 동생이 죽게 되자 그 앞잡이를 찔러죽이고 스페인군에게 끌려간다. 2부는 1930년대 독재시대에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루시아(에스린다 누네즈)가 혁명가 알도와의 사랑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그녀의 시위활동과 알도와의 행복한 한때, 알도를 죽게 한 폭력적인 정치상황 등이 내레이션과 함께 펼쳐지면서 알도의 아이를 임신한 루시아가 카메라를 직시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마지막 이야기의 루시아(아델라 레그라)는 혁명 후 농촌의 노동자로 등장한다. 남편의 질투심 때문에 아무 일도 못 하던 루시아는 문맹퇴치를 위해 파견된 혁명군에게 글을 배운 후 남편에게 떠난다는 편지를 쓴다. 그러나 곧 그녀는 남편에게 돌아와 앞으로는 일도 하고 남편도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 감독 1941년 쿠바 하바나에서 태어났다. 10대에 이미 영화산업 현장에 뛰어들었으며 18세에 처음으로 단편영화를 만든다. 그 후 이탈리아 로마로 영화유학을 떠났으며, 돌아와 직접 시나리오를 쓴 단편 <마누엘라>(1966)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영화는 그가 쿠바 여성에게 헌정했던 많은 영화들 중 첫 번째 영화에 해당한다. 이어 만든 <루시아>(1968)는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그랑프리 등 많은 상과 함께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1970년대 초반 동성애 같은 반사회적 행위을 금지하는 사회분위기로 인해 그가 개인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이 금지돼 힘든 시간을 겪는다. 하지만 여전히 작품활동을 멈추지 않던 그는 1980년대 들어 <세실리아>(1982)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으며 많은 논란과 함께 큰 성공을 거뒀다.
◎ <휘파람(La Vida es silbar)> 방송일시 : 2005년 3월 26일(토) 밤 11시 45분 -
제 작 : 1998년/쿠바 감 독 : 페르난도 페레즈 출 연 : 롤란드 브리토, 루이스 알베르토 가르시아, 클라우디아 로하스, 코랄리아 벨로즈
- 줄거리 열여섯 살 난 베베(베베 페레즈)는 행복한 소녀이다. 그녀는 행복하지 않은 다른 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세 사람 중 한 명인 마리아나(클라우디아 로하스)는 댄서로서 지젤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남자랑 잠자리를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또한 줄리아(코랄리아 벨로즈)는 아무 곳에서나 의식을 잃기 시작한다. 그리고 엘피디오(루이스 알베르토 가르시아)는 물라토 출신의 음악가로서 쿠바를 배회하는데, 그는 과거 어머니에게서 버림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렇게 영화는 묵묵히 하바나를 살아가는 여러 인물들의 일상을 관찰한다.
- 감독 1945년 쿠바 하바나에서 태어났다. 페르난도 페레즈가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12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본 <콰이강의 다리> 덕분이었다. 하바나 대학에서 스페인어와 문학을 공부하고, 이후 비평가와 하바나 대학에서 영화사를 가르치는 교수로 활동해 왔다. 1961년 설립된 쿠바영화예술산업연구소(ICAIC)의 제작실장으로 들어갔고 그 후 조감독을 거쳐 1974년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민중들이 미국에 저항하는 투쟁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데뷔하기까지 13년이 필요했다. 그는 현실의 정치적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다큐멘터리스트였다. 그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작품들인 <지금>(1965), 〈L.B.J>(1968), 〈79 봄들>(1969) 등은 각각 미국에서의 인종 차별, 미국의 정치·사회적 부패,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를 다룬 영화들이다. 이후 1987년 <위험한 생활>로 장편 데뷔하고 3년 뒤 <헬로 헤밍웨이>(1990)를 만들었다. <마다가스카르>(1994)를 통해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고 선댄스영화제에서 라틴아메리카 영화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휘파람>(1998)으로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되고, 프리부르국제영화제 관객상, 선댄스영화제 특별심사위원상, 하바나영화제 감독상, 촬영상 등을 받았다. 5년 뒤 만든 다큐멘터리 <스위트 하바나>(2003)로 하바나영화제 12개 부문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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