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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앙코르 '다큐프라임' 조선의 프로페셔널-화인  
작성일 2008-10-16 조회수 13770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과 인생

EBS‘다큐프라임’조선의 프로페셔널 - 화인


1부 풍속화, 조선을 깨우다 - 김홍도 : 10. 20(월)

2부 여인과 색깔, 조선을 흔들다 - 신윤복 : 10. 21(화)

3부 조선풍속화, 세계를 거닐다 - 김준근 : 10. 22(수)


방송 : 10월 20일(월)- 22일(수) 밤 11시 10분 ~ 12시

 

담당 : 기획다큐팀 김광호 PD (526-2599, 016-9320-9095)


 

최근, 조선의 천재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다. EBS는 드라마와 영화로 소개되기 이전인 7월에 <다큐프라임> ‘조선의 프로페셔널-화인’을 통해 두 인물의 삶과 그림 세계를 집중 조명한 바 있다.

EBS는 10월 20일부터 3일간 ‘조선의 프로페셔널-화인’을 앙코르 방송한다. 시대를 호흡하며 사실주의적인 풍속화로 천재성을 평가받는 김홍도, 색(色)으로 조선을 표현한 신윤복, 19세기 개화기 조선의 운명을 기록한 김준근의 삶과 그림, 그리고 그들이 담은 시대를 분석한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김홍도와 신윤복을 들여다보고,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매력있게 재구성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있을 듯 하다.


  김홍도의 <씨름도>를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A4 크기의 화폭에 무려 22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는 사내는 씨름판이 이미 오래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죽신과 짚신은 신분 차이를, 들배지기 기술과 샅바를 놓치기 직전의 긴장된 순간은 이 씨름의 승부를 이미 보여주고 있다. 씨름판의 승부가 결정될 찰나의 생동감과 사실성을 기가 막히게 포착한 김홍도의 천재성은 어느 정도였을까? EBS '다큐프라임‘ <조선의 프로페셔널-화인> 1부 ‘풍속화, 조선을 깨우다-김홍도’는 김홍도의 천재성의 비밀을 찾기 위해 그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간다. 궁중 최고의 화가였으며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던 화가이기도 하였던 그가 어떻게 해서 일반 서민들의 풍속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어땠는지 등 흥미로운 사실들이 밝혀진다.
  2부와 3부는 신윤복과 김준근을 조명한다. 기생의 계집종과 함께 두꺼운 이불로 몸을 급하게 가린 양반의 모습이 담긴 <기방무사>, 웃통까지 벗은 채 기생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양반의 모습을 담은 그림 <유곽쟁웅> 등 천한 신분이었던 기생의 모습을 자주 그린 신윤복은 향락의 모습만을 그려낸 저속한 수준의 화가던 것일까?  프랑스 파리, 파리의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수장고에 작품 170여점이 보관되어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의 화가인 기산 김준근이 왜 한국인에게는 낯선 이름일까? 조선역대서화가들의 행적을 총 정리한 '근역서화징'에 이름 한 자 거
론되지 않는 화가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니,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
  EBS '다큐프라임‘ <조선의 프로페셔널, 화인>은 이 모든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시대 세 명의 화가,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조명한다. 시대를 호흡하며 사실주의적인 풍속화로 천재성을 평가받는 김홍도, 색(色)으로 조선을 표현한 신윤복, 19세기 개화기 조선의 운명을 기록한 김준근의 삶과 그림, 그리고 그들이 담은 시대를 분석한다. 

 

풍속화, 조선을 깨우다 - [김홍도] <10.20 방송>

이전의 그림들과 달리 조선의 살아있는 모습을 풍속화속에 고스란히 담은 화가가 있다. 바로 18세기말 조선에 본격적인 풍속화의 시대를 열었던 화가 김홍도. 당대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 장면을 포착하는 방법으로부터 인물들의 생생한 성격 묘사에 이르기까지, 그는 조선의 삶을 담아낸 화가였다.
그런데 김홍도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면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김홍도는 궁중 최고의 화가였으며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던 화가이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해서 일반 서민들의 풍속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러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시대 궁중최고의 화원 김홍도, 그는 거리의 화가였다?
김홍도 풍속화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을 순간 포착해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는 생동감과 사실성에 있다. 이런 그림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그의 천재성 때문이었을까? 씨름판에서도 저자거리에서도 하다못해 주막에서까지 화첩을 꺼내들고 그림을 그리던 사내, 자신이 본 순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림으로 담아내고 싶었던 사내. 그가 바로 김홍도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그림 속에는 생동감은 물론 조선 서민들의 삶의 이야기도 다양하게 녹아있다. 이렇게 탄생한 김홍도의 <씨름도>는 A4 크기의 화폭에 무려 22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 모든 인물에게 김홍도는 어떤 역할을 부여했을까?
이제 <씨름도>를 하나하나 뜯어보자. <씨름도> 안에서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는 사내, 이는 씨름판이 이미 오래됐다는 것을 동작하나로 보여주는 것이다. 두 씨름 선수의 가죽신과 짚신은 그들의 신분 차이를 보여주고 들배지기 기술과 샅바를 놓치기 직전의 긴장된 순간은 이 씨름의 승부를 이미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신발과 갓을 벗고 긴장한 채 씨름판을 바라보는 다음 선수의 모습까지, 이처럼 <씨름도>는 씨름판의 승부가 나는 그 짧은 순간의 긴장과 흥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김홍도의 천재성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김홍도의 풍속화를 빛나게 하는 그의 천재성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김홍도는 선의 마술사이다?
한창 흥이 올라있는 춤판, 유려한 무동의 움직임. 서당에서 웃음을 참고 있는 훈장과 울고 웃는 아이들의 감정. 마치 금방이라도 포효할 것 같은 용맹하고 날렵한 조선 호랑이의 섬세한 털과 근육의 긴장까지, 김홍도가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그의 선에 있다.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의 역할과 움직임에 대한 표현 방법은 단 한가지, 바로 선(線)이었다. 김홍도는 선의 흐름과 굵기, 또한 그 속도를 자유자재로 구사함으로써 인물의 감정까지 묘사할 수 있었다. 선의 마술사 김홍도가 그렸었던 선 들, 이 또한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금강산 그림을 통해 그의 탁월한 사실성을 확인하다?
지금도 그의 풍속화가 우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유는 바로 탁월한 사실묘사에 있다. 김홍도의 사실성은 이전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탁월한 사실묘사는 어느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을까?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가 그린 금강산 관련 그림이다. 김홍도 외에도 금강산이 담긴 걸작들을 많이 남겼던 또 다른 화가가 바로 겸재 정선이다. 그러나 둘의 그림은 확연히 차이를 보인다. 금강산에 있는 폭포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구룡폭포. 이곳을 두 화가 모두 그렸는데, 정선의 그림에는 실제 있는 폭포 위 봉우리가 보이질 않는다. 이는 전통의 화법에 충실해 느낌을 중시하였기 때문인데, 하지만 김홍도의 그림은 오늘날 카메라의 화각과 거의 동일하다. 제작진의 촬영결과 역시 이를 입증하는데... 금강산 그림에 나타난 그의 ‘천재성’의 비밀들에 대해 알아본다.
 

*김홍도는 서양의 광학기구를 써서 그림을 그렸다?
이처럼 그가 사실묘사에 탁월했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서양의 문물이 밀물처럼 들어오던 17~18세기의 조선, 서양의 카메라 옵스큐라란 기구가 중국을 통해 들어와 있었다. 물체를 실제와 똑같이 그릴 수 있게 해주는 기구로 원리와 구조는 카메라와 비슷하다. 이런 과학적 기구의 영향을 실제 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으로 궁중화원 이명기가 있었다. 그는 왕의 어진 제작을 2번이나 책임졌던 최고 화원인데 그의 그림 속에서 이에 대한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그가 남긴 윤증 초상화의 경우에는 밑그림에 해당되는 초본도 남아있다. 그런데 그 초본에 이상한 격자무늬가 있다.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다보니 서양화가 알프레드 뒤러에게까지 이어졌다. 모델과 화가 사이에 격자 무늬창을 세우고 격자 사이로 보이는 형상에 따라 종이로 옮기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를 통해 이명기는 서양화법에도 뛰어났던 화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이명기와 '서직수 초상'을 합작해 그린이가 다름 아닌 바로 김홍도였다. 둘은 정조어진을 함께 그렸을 만큼 영향을 주고받았던 관계였다. 이를 통해 김홍도가 서양화법을 접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당시 기록도 존재한다. 그 내용을 알아본다.
 

*그의 그림 속에 담겨진 풍자와 해학은?
빨래터의 아낙들을 담은 그림 <빨래터>가 있다. 여인들은 서슴없이 허벅지를 드러낼 정도로 한껏 자유로워 보인다. 그런데 이 그림의 한 구석에 낯선 인물이 숨어있다. 바로 빨래터의 아낙들을 몰래 훔쳐보는 양반! 이뿐만이 아니다. 남편과 함께 길을 걷는 아낙에게 눈길을 주는 양반의 은밀한 눈길을 그리는 동시에 망아지가 어미 말의 젖을 빨고 있는 모습을 그려 넣는 재치도 보여주었다. 이런 장면들이 있어 우리는 그의 풍자와 해학을 또렷하게 기억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이런 풍자와 해학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그림에 풍자와 해학을 담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홍도의 화풍, 40대 이후 갑자기 변화하다?
김홍도는 47세에 정조의 총애를 받아 연풍고을의 사또로 부임했다. 중인 신분으로서는 최고의 벼슬자리에 오른 셈이다. 이후 그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바로 화풍의 변화였다. 현장감이 넘치던 풍속화가 그의 작품세계에서 사라지는 대신 격조 높은 문인화풍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제 김홍도는 중인의 신분을 버리고 사대부가 되고자 했다. 그 의식의 변화가 화풍에 그대로 담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김홍도가 파직을 당했다! 정사는 돌보지 않고 백성들의 중매 및 매사냥에만 매진한다는 것. 정조의 도움으로 처벌만은 면했지만 김홍도는 다시 한 번 화풍의 변화를 겪는다. 과연 그의 화풍은 어떻게 변화했으며 그 변화의 끝은 무엇이었을까?
 

여인과 색깔, 조선을 흔들다 - [신윤복]<10.21 방송>


성리학의 나라 조선. 이런 조선사회를 뒤흔드는 그림 한 점이 나타났다. 노란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그네를 타려는 여인의 모습과 가슴을 드러내고 목욕을 하는 여인들, 그리고 이들을 몰래 훔쳐보는 까까머리 동자승까지! 이처럼 파격적인 그림을 그린 이는 다름 아닌 화가 신윤복. 여인과 색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 충격적으로 조선을 놀라게 한 신윤복은 퇴폐적이고 자극적인 그림을 그렸던 저속한 화가로 오인되어 왔다.
그런데 정말 신윤복은 저속한 수준의 화가였을까? 아니면 미적감각이 뛰어나고 섬세함을 가졌던 화가였을까? 이런 의문들을 풀기위해 그의 그림을 서양 미술 방식으로 분석해보았다. 또한 신윤복의 그림에서 눈에 띄는 점은 바로 화려한 색이다. 당시에는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색의 재료들이 없던 시대. 그렇다면 신윤복은 조선사회에서 이런 화려한 색의 재료를 어떻게 구하였을까? 신윤복의 대표작이자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그림들을 직접 분석하여 이런 의문점을 풀어본다!
 

*신윤복은 향락의 모습만을 그려낸 저속한 화가였을 뿐이다?
신윤복의 대표작 중 하나인 <기방무사>. 어느 여름 날, 기방에서 벌어진 낯 뜨거운 광경을 담고 있다. 갑자기 외출에서 돌아온 기생 때문에 당황해, 더운 날씨에도 기생의 계집종과 함께 두꺼운 이불로 몸을 급하게 가린 양반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또한 술에 취해 웃통까지 벗은 채 기생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양반의 모습을 담은 그림 <유곽쟁웅>도 기방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처럼 그의 그림에는 가장 천한 신분이었던 기생들과 기방이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면 신윤복은 왜 기생을 그림에 담았을까? 단순히 향락의 순간만을 그렸던 것일까? 아니면 이전에는 단 한 번도 화폭에 담기지 못했던 기생을 과감하게 등장시키면서 성문화와 향락문화가 급격히 늘어난 당시 조선의 세태를 풍자, 비판한 것은 아니었을까? 과감한 그의 그림들을 통해 신윤복의 조선에 대한 발언을 분석해 본다.
 

*양반을 향한 통렬한 풍자를 하고 싶었다?
신윤복의 그림에 기생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대상, 바로 양반들이다. 철저한 신분사회 조선의 정점에 서있던 양반. 그러나 양반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성리학을 외치는 근엄한 얼굴과 한편으로는 기생들과 향락과 유흥에 빠진 이중적인 모습. 신윤복은 자신의 눈에 비친 양반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벌건 대낮에 무릎위에 기생을 앉힌 양반(*그림 청금상련) 어느 봄날 자신보다 나이 많은 계집종을 희롱하는 모습(*그림 소년전홍), 그리고 양반의 매춘행위까지(*그림 삼추가연) 그림에 담아 양반들의 이중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동시에 해학과 풍자를 잊지 않고 있다.
 

*그림에 빠지지 않던 화려한 색(色), 조선시대 어떻게 이런 색의 재료를 만들어 사용했을까?
신윤복은 색채의 마술사였다. 그의 그림에는 의상, 배경 등에 색이 빠지지 않는다. 그의 그림이 빛나는 데는 여색과 더불어 바로 이런 화려한 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윤복의 시대에는 현재와 같은 색의 재료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 그는 어떻게 화려한 색들을 그려냈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색채 전문가를 찾아갔다. 우선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단오풍정>의 빨간 치마. 그림 속 치마의 빨간색은 바로 수은 광맥에서 채취되는 천연안료 '주사'를 사용해 그렸다. 부적이나 인주에 쓰이던 주사가 그림 속 색의 재료로 쓰였던 것이다. 이런 광물재료 외에도 그의 그림 속 색 재료에는 놀라운 비밀들이 숨겨져 있다. 화려한 색채의 정체와 기법들에 대해 알아본다.
 

*신윤복의 그림을 현대 회화의 방식으로 분석하다?
신윤복의 그림 속에는 배경이나 처마 선 등이 전체 화면의 틀을 고려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이는 배경이 없던 이전의 풍속화와는 다른 점으로 신윤복의 강한 미의식을 보여주는 증거들인이다. 신윤복의 미의식을 현대 회화의 구도분석 방식으로 분석한 학자를 통해 신윤복의 탁월한 미의식에 대해 확인해본다. 신윤복은 채색을 할 때 색의 농담까지 철저하게 고려함으로써 더욱 강렬하고 눈에 확 띄는 그림들을 그려냈다.
 

*걸작, 신윤복의 미인도
신윤복의 예술세계에 획기적인 선을 그은 작품 <미인도>.
앳된 기녀를 모델로 그린 이 그림은 머리카락 한올 한올에까지 나타나는 섬세함과 단아한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화폭에 담겨있다. 신윤복 자신역시 이 <미인도>에 '여인의 가슴속 정한까지 모두 그려낼 수 있었다'라는 화제를 남길 만큼 스스로도 만족해 했는데... 어쩌면 신윤복, 그는 그림 속 여인을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제작진은 신윤복 당시의 느낌을 재현해 보기 위해 문화재 복원 전문가와 함께 <미인도>의 복원 작업도 진행해 보았다.
 

*신윤복, 그 쓸쓸한 뒷모습
시대가 변했다.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이후 조선은 문화적 암흑기를 맞는다. 정치는 세도정치로 흘러갔고 문화예술은 급격히 쇠퇴해 갔다. 잠시 꽃피던 문화의 르네상스가 막을 내린 것이다. 이즈음 신윤복도 기록 한 줄 남기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그러나 그가 사라져 간 빈자리에는 조선을 흔들었던 그의 작품들이 남아 신윤복, 그를 위대한 화인으로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고 있다.

 

조선풍속화, 세계를 거닐다 - [김준근]<10.22 방송>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는 망원경이었다. 세계는 기산풍속화를 통해 조선을 알았다. 기산이란 그의 호는 명품브랜드였다. 서양에서 온 사람들은 기산 김준근이라는 낙인이 찍힌 조선풍속화를 사진보다도 더 선호했다. 또한 기산은 미래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기산의 풍속화는 우리가 잃어버린 조상의 전통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모른다.
과연 김준근 그는 누구인가? 그의 그림이 전세계 11개국에서 발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국내에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왜 그의 이름조차 그리 생소한 것일까? 이 프로그램은 바로 그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나선 길.베일에 싸인 19세기 말 조선의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을 만나보자
 

*의문 하나! 기산 김준근, 그의 그림은 어떻게 세계의 박물관에 전시되었나?
우리가 처음 그의 그림을 만난 것은 프랑스 파리, 파리의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수장고에는 기산의 그림 170여점이 보관되어있다. 서구에 조선과 조선 사람들의 존재를 알렸다는 그의 그림. 하지만 조선역대서화가들의 행적을 총 정리한 '근역서화징'에조차 그의 이름이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전세계 약 11개국에 1190여 점 이상 퍼져있다. 조선에서 그 이름조차 거론된 적 없는 화가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니,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 그의 사적인 기록이 전무한 상황에서 그와 관련된 유일한 단서인 그림을 통해 그를 역추적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그가 남긴 풍속화는 부산, 원산, 인천 제물포 등의 도시에서 그려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지역의 그 어떤 원동력이 기산의 풍속화를 세계로 퍼뜨릴 수 있게 한 것일까?
 

*의문 둘! 김준근의 그림엔 조선말 시대의 변화상이 담겨있다?
채색이 되어있는 김준근의 풍속화 중에서 그림의 윗부분과 아랫 부분의 배경색 차이가 심한 그림들이 눈에 띄었다. 한눈에 봐도 단순한 채색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배경색의 차이를 나타나게 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바로 종이의 재질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한지와 함께 당시 유통되기 시작한 서양 양지를 이어 붙여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준근의 작업방식도 이전과는 달랐다. 기산 김준근이라는 이름을 상호명으로 해 여러 명의 화가들이 공동제작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는 그의 그림 속에 담겨 있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는 그림이지만 그림 속 인물들의 얼굴 묘사 방법이 현저하게 다르다. 이마가 넓고 둥근 형태로 묘사되어 있는 그림이 있는가하면 또 다른 그림에는 동일인이 그렸다 하기에는 매우 다르게 표현된 인물이 들어있었다. 또한 그림에 써넣은 화제의 필체가 그림마다 다르다. 기산 김준근 그는 무슨 이유로 그림을 공동으로 제작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일까? 그 해답 또한 알아본다.
 

*의문 셋! 김준근은 천로역정의 삽화가다?
신문로에 위치한 한 고서화 박물관에서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찾았다. '천로역정'이란 영국작가 존 버니언이 지은 종교 소설로 1895년에 게일 선교사가 최초로 번역해 조선에 들어왔다. 우리말로 번역된 첫 근대 번역소설인데 이 책엔 개성있는 삽화가 그려져 있다. 서양인이 서양을 배경으로 집필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삽화의 등장인물과 배경엔 조선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기독교의 천국을 묘사한 부분에서 천사는 우리 전래의 선녀 모습을 연상케 하도록 그려져 있고 피리를 부르는 동자의 모습까지 보인다. 악마를 만났다고 표현된 부분에서 악마 역시 불교의 나한상을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같은 천로역정이라도 중국에서 번역, 출간된 천로역정에서는 서양 원작 그대로 날개를 단 천사나 서양식 갑옷과 방패를 든 인물이 등장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삽화라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바로 ‘천로역정’의 삽화를 그린 화가가 김준근이라고 말한다. 기산 풍속화의 완결편이라고 평가받는 ‘천로역정’의 삽화. 과연 그 주인공은 우리가 추적해온 바로 그 김준근인 것인가? 그렇다면 ‘천로역정’의 삽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산 김준근. 그 이름 외에는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19세기말 조선의 화인(畵人). 세계가 인정하지만 우리에겐 철저하게 잊혀졌던 화인(畵人). 우리는 이제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기산, 김준근 그를 다시 현재로 불러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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