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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사특집다큐''왕산家사람들''일본취재  
작성일 2005-05-26 조회수 23676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폭도(暴徒)의 수괴(首魁)였지만 존경했다” EBS 창사특집다큐 ‘왕산家 사람들’ 일본 취재서 왕산 심문했던 헌병사령관 손자 만나 헌병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 전기문서 ‘왕산 존경했다’는 내용 확인
방송 : 제1편 ‘의병장의 후손으로 살아가기’ 6. 22(수) 밤 10:00~10:50 제2편 ‘잊혀진 후예들’ 6. 23(목) 밤 10:00~10:50
연출 : 김동관 PD (019-226-9571)
○ 최근 EBS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왕산家 사람들’ 제작팀은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된 왕산을 심문했던 헌병사령관의 손자를 일본서 만나고 왔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당시 헌병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가 심문과정에서 왕산의 기개와 인품에 감복해 마지막까지 구명을 위해 애썼다는 내용을 그의 전기문서 확인했다. 왕산을 존경했던 일본 헌병사령관 아카시에 관한 일화는 역사 연구가들 사이에서 이미 알려져 있었으나 아카시 후손을 직접 찾아가 확인한 것은 EBS 제작팀이 처음이다. ○ 왕산(旺山) 허위(許爲)는 구한말 정미의병 당시 전국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13도 각 의병들을 연합해 서울로 진격했던, 일명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한 인물로 한국 의병사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를 기리기 위해 당시 그가 진격하고자 했었던 코스인 서울 동대문~청량리 구간은 현재 그의 호를 따 ‘왕산로’라 불리고 있다. ○ ‘서울진공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현재의 경기도 포천군 지역의 민가에 은신하면서 제2차 서울탈환 작전을 준비 중이던 왕산은 1908년 6월 11일, 일본 헌병대의 급습을 받고 체포되기에 이른다. 일본군에서는 이 날을 일컬어 ‘폭풍의 날’이라고 했을 만큼 왕산의 체포는 일본군에게 있어 대단한 사건이었다. 이후 허위는 서울로 이송돼 심문을 받게 되는데 심문의 당사자가 바로 일본의 헌병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였다. 아카시 모토지로는 당시 조선에 헌병경찰 제도를 도입해 헌병통치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폭도의 수괴’였던 왕산의 비중을 감안해 헌병사령관이 직접 취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아카시 모토지로는 심문과정에서 의병장 왕산의 인품과 식견에 내내 존경의 마음을 품었다고 한다. 아카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왕산의 구명을 위해 애썼으나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왕산은 마침내 ‘서대문 형무소 사형수 제1호’로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내용이 아카시의 전기문에 기록돼 있다. ○ ‘왕산家 사람들’ 취재팀은 수소문 끝에 찾아간 아카시 모토지로의 손자 아카시 모토츠구씨에게서 당시 심문 과정에서의 일화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아카시 모토츠구씨는 조부의 전기문(傳記文)을 직접 보여주며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다음은 그 대표적인 일화 중 하나다. 『 허위는 체포 된 후 의병투쟁의 동기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일본이 한국의 보호를 부르짖는 것은 입뿐이요, 실상은 한국을 멸할 흑심을 가졌다. 우리 들은 이를 좌시할 수 없어 미력하나마 의병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이에 대해 아카시 모토지로는 “일본이 한국에 임하는 것은 병자를 안마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팔다리와 신체를 주무르고 두드리면 일견 병자를 고통에 떨어뜨리는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마침내 병자의 병은 낫게 될 것이다.”라고 응수하였다. 이에 허위는 재차 책상 위의 연필을 가리키면서 “이 연필을 보라. 일견 붉은 색이지만 그 내면은 검은 색이지 않은가? 당신네 나라가 한국을 대하는 것은 이와 같다. 그 껍질과 내면이 크게 다름은 너무도 명백한 것이다.”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 이와 같은 허위의 강직한 품성에 아카시 모토지로는 그를 “국사(國士)”로 칭하며 존경하였고 이토 히로부미에게 그의 구명을 호소하기까지 한 것이다. ○ EBS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왕산家 사람들’은 광복 60주년을 맞아 구국의 일념으로 구한말 의병 활동에 목숨을 바친 의병장 왕산 허위에 대해 재조명하며, 조상의 의병활동으로 인해 가문 전체가 질곡의 과정을 겪으며 현재 국내와 러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 등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 수 밖에 없는 그의 후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은 조상의 의병활동 전력(前歷)이라는 멍에로 고난의 길을 가야만 했던 애국지사의 후손들의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왕산 허위의 후손들은 또 다른 역사의 희생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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