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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도자료]'다큐프라임' 경술국치 100년 특별기획 - 개항과 전쟁  
작성일 2010-03-04 조회수 12813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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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


개항기 삼국의 미래를 바꾼 3인의 리더


EBS <다큐프라임> 경술국치 100년 특별기획

開港 戰爭


방송 : 3월 8일(월)~10일(수) 밤 9시 50분 ~ 10시 40분


연출 : 이주희 PD (526-2710)



  21세기와 함께 찾아온 세계화의 열풍! 자본, 기술, 노동의 총체적 세계화라는 태풍은 각국의 준비상태나 의지와 무관하게 몰아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첫 번째 세계화가 아니다.

  이미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세계화의 태풍은 전 지구를 휘감은 바 있다. 그 첫 번째 세계화의 시점에서 동아시아의 3국은 각기 다른 선택을 했고, 다른 운명을 겪었다. 이제 두 번째 세계화를 맞은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100여년 만에 찾아온 새로운 변혁의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EBS <다큐프라임> ‘개항과 전쟁’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첫 번째 세계화의 시기로 시청자를 안내한다.


  마침 올해는 1910년 경술년에 나라를 빼앗긴 지 꼭 100년이 되는 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역사를 보는 눈과 세계를 보는 넓은 시야를 갖게 해 줄 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 ‘개항과 전쟁’은 8일부터 10일까지 밤 9시 50분에 방송된다.


동아시아 3국, 세계화의 폭풍에 휘말리다

  개항의 역사를 논할 때,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 한국, 일본, 중국 각국이 따로따로 직면했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개항기 3국의 역사는 동아시아 전체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개항과 전쟁>은 각 시대의 리더 3인을 필두로 3국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흥미롭게 보여준다. 그 3인은 바로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리홍장, 그리고 이토히로부미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세 사람은 세계를 휩쓴 개항의 파도에서 각기 다른 선택을 했다. 아편전쟁의 패배로 체제의 약점을 드러낸 청, 덴포 개혁의 좌절과 함께 강제개항의 위기에 처한 일본, 부패한 세도정치와 전국적인 민란으로 왕조의 생존이 위협받던 조선. <개항과 전쟁>‘ 1부-혼란’에서는 재연을 통해 이 혼란의 시기를 객관적으로 조명함으로써 각국의 상황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과거의 역사로 미래를 점친다

  ‘2부-선택’에서는 체제의 위기 속에 개혁과 부국강병을 꿈꾸는 3인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선택하는 과정을 다룬다. 쇄국이냐 개방이냐의 선택이 엇갈리고, 미래가 갈린다. 리더의 선택은 시대의 평가를 받는 법.‘ 3부-전쟁’을 통해 전쟁이라는 거대한 계기로 각국이 추진하던 개혁이 그 성과를 어떻게 시험받는지를 보여준다. <개항과 전쟁>은 3인의 리더를 통해 당시의 정세를 다양한 각도에서 응시함으로써 개항과 리더십 문제에 대한 보다 명료한 시각을 제공한다.

  이토 히로부미, 혹은 이등박문.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조선의 국적!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이토와 그의 동료들을 추적한다. 젊은 투사로서의 이토, 패기만만한 정치가로서의 이토, 식민지 패권주의자로서의 이토, 근대일본을 만들어가는 이토와 그 동료들의 이야기가 우리 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한때 매국노로 매도당했던 리홍장은 최근 중국의 개혁개방운동과 함께 재평가 받고 있다. 합리적인 현실주의자로 망해가는 청나라를 혼자 힘으로 떠받혔던 인물.현실적인 한계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거인. 개인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갖추었으면서도 그가 실패했던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새로운 교훈을 배운다.

  단지 쇄국정책의 집행자로만 알려졌던 흥선대원군. 하지만 그의 집권 초 조선의 천주교도들이 자유로운 포교의 날을 기대했을 만큼 그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당장의 현실적 정치적 필요성으로 인해 그는 점점 더 완고한 쇄국주의자로 변해간다. 개방의 계기도 있었고 개방을 감당할 능력도 있었지만 결국 쇄국으로 치닫고만 그의 선택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개항과 세계화는 한나라에만 닥친 현실이 아니다.

  개항의 역사를 논할 때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할 것은 이것이 한국, 일본, 중국 각국이 개별적으로 직면했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19세기말 서세동점과 개항의 파도는 동아시아 전체에 밀어닥친 것이었고, 그 진행과정과 결과역시 동아시아 전체라는 틀 속에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개항기 3국의 역사를 개별적으로 파악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히려 1840년 아편전쟁에서 1895년 청일전쟁까지의 기간을 개항과 전쟁이라는 포괄적인 시각에서 재조명함으로써 개항과 리더십의 문제에 대한 보다 명료한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모두가 알지만 제대로 행하는 이는 찾기 힘들다. 주변 열강들의 끝없는 위협을 받아오면서도 정작 주변 정세를 알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던 19세기 말의 조선. 지금도 그 시대에 대한 무관심은 여전하다. 과거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역사는 지나간 세월일 뿐이다. 식민지에서 출발하여 유일하게 OECD 국가가 된 대한민국. 그 높아진 위상에서 이제는 과거를 제대로 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때다. <개항과 전쟁>은 그 혁신적인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이주희 PD 인터뷰> “언짢아도 우리 역사죠”


개화기 3국의 정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듯하다.

무엇보다도 자료가 부족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그 시대를 두고 자국과 타국 모두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아마도 불쾌한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3인으로 대표한 이유도 보다 객관적으로 당시를 서술할 수 있는데다가 세 사람이 당시의 3국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의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넘어선 인물은 이토 히로부미뿐이다. 우리에게 가장 민감한 사안인 일본의 긍정적인 면도 여과 없이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촬영 당시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재연이 전체 내용의 1/3을 차지하느니만큼 미술팀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격동의 시기라서 사무라이 복장과 양복을 넘나드는 등 의상과 소품의 변화가 많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경험은 3인의 묘지를 방문했을 때다. 이토 히로부미의 묘는 쇼군이나 천황의 묘지 수준인데 반해 리홍장의 묘는 문화혁명 때 짓밟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표시만 남아있다), 대원군의 묘는 방문객이 적어 찾아가는 길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후대가 각 나라의 리더들을 대하는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서 씁쓸했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사람은 자기가 못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잘하는 것 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있다. 변화가 필요한 시대에 스스로 변화할 기회를 잡지 못했던 조선의 경우를 잘 표현한 말인 듯하다. 잘해왔던 시스템에 집착해서 새로운 시스템을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다큐를 보는 분들이 과대/과소 평가를 넘어 시대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야를 갖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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