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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기행' 홍어의 곰삭은 맛이 유혹하는 나주로~  
작성일 2010-04-22 조회수 13213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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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


곰삭은 홍어가 유혹하는 나주



EBS <한국 기행> 나주


방송 : 4월 26일(월) ~ 4월 30일(금) 밤 9시 30분-9시 50분


기획 : 외주제작부 류재호 PD(526-7425)

연출 : 이종진 PD(070-8768-7950)



남도의 젖줄, 영산강을 끼고 비옥한 나주평야를 가진 나주. 이곳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풍요에 바깥세상을 사모하지 않고 여유로운 문화를 만들며 살아왔다고 전해진다. EBS <한국기행>은 영산강이 적셔준 비옥한 나주평야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영산강이 범람하며 만들어낸 습지에서 자라난 쪽 식물로 파란 쪽빛 옷을 입으며, 바다에서부터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와 자연스럽게 삭혀진 홍어를 상에 올리며 살아온 나주 사람들의 풍요로움을 소개한다.


  영산강에 기대어 사는 나주 사람들은 아직도 삭힌 홍어를 껍데기도 벗기지 않고 썰어 보리 싹을 넣고 된장국에 함께 끓인 홍어보리국을 즐겨 먹는다. 홍어의 곰삭은 맛은 아직도 사람들을 모으는 남도만의 매력이다.

  영산강이 범람하며 만들어낸 습지에서는 전통염색의 재료인 쪽 식물이 자라났다. 마을 아낙들은 여름이면 모두 쪽물 들인 쪽 치마를 입고 겨울이면 그 쪽 치마 안에 좀 두꺼운 천을 덧대어 입었다. 나주 사람들이 쪽물 들여 입었던 것은 영산강이 주는 풍요로운 삶에서 한 가닥의 여유였다.

  나주는 예로부터 아기자기한 ‘소목’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사용된 고을이었다. 나주에서 유일하게 몇 대를 이어서 오래된 가옥에 살고 있는 집, 남파고택에서는 아기자기한 나주 소반들과 나무로 만들어진 다양한 ‘목물’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84세의 종부와 32살의 손주며느리가 50년 된 나주 소반 위에 젓갈이 세 가지 이상은 꼭 올라간다는 나주 반상을 내놓는다.


<1부> 영산강, 아흔아홉 굽이


목포에서 나주까지 배로 오르는 영산강 물길은 아흔아홉 구비였다 한다. 그 굽이굽이마다 기대어 사는 나주 사람들. 영산강 물길이 유독 이곳에서 훨씬 굽이 쳐 흐른다 해서 이름 붙여진 구진포. 바다에서 영산강 물길 따라 올라오는 배처럼 배 따라 올라온 바닷물이 영산강 민물과 만나 장어로 유명했다던 곳이 바로 구진포다.

이곳에서 부모의 생업이었던 장어 잡이 어부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17년 장어 잡이 어부, 김재석 씨(48). 지금도 김재석 씨는 장어를 잡으며, 장어뿐만 아니라 현재는 희귀한 황복, 바닷고기인 웅어 등이 가득 올라왔던 구진포에서의 옛 추억에 미소 짓는다.

나주에서 유독 생각나는 달콤한 나주 배. 달콤함이 높은 이유가 영산강이 만들어준 비옥한 옥토와 영산강을 타고 온 바닷바람, 해풍 때문이란다. 이런 당도 높은 배를 만드는 배 일 년 농사를 결정짓는 배 수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40년 배 농부 정웅기(65) 박귀순(62) 부부. 하얗게 핀 배꽃을 따서 모은 씨방을 말리면 씨방이 톡톡 터지면서 나오는 꽃가루. 그렇게 받아낸 꽃가루를 일일이 배나무에 골고루 뿌려야 가을에 달콤한 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배 수정으로 한창인 오후 한 나절에, 배 밭 아래 앉아 배를 넣어 더욱 시원한 물김치로 새참 하며 짧은 여유를 흥겹게 즐기는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영산강 하구언 수문이 열리고 나주로 들어오는 어선을 따라 영산강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2부> 곰삭은 맛은 두고 갔구나.


전주에서 나주로 가는 길 주위에 놓여있는 모든 땅을 전라도라 말한 것처럼, 나주는 고려시대 전국 12목 중 하나로 영산강 물길 따라 남도의 모든 조세들이 모였던 남도 물류의 집산지였다. 흑산도에서 영산강을 타고 조세를 싣고 올라오는 배는 보름이 걸려야 나주에 도착했다. 흑산도 사람들이 흑산도의 명물인 홍어를 싣고 나주에 도착했을 땐 홍어가 삭혀져 있었다. 흑산도 사람들은 회로 먹는 홍어를 삭혀진 홍어 그대로 나주 사람들은 먹기 시작했다.

다른 고기들은 삭혀서 먹으면 탈이 났지만 신기하게도 삭혀진 홍어만은 먹어도 탈이 나지 않았다. 그런 고마운 고기를 나주 사람들은 사랑하게 되었고, 그렇게 홍어 숙성의 노하우는 쌓여가 삭힌 홍어의 본 고장이 되었다.

옛날 보릿고개 넘던 시절, 삭힌 홍어를 껍데기도 벗기지 않고 썰어 싹만 나서 보들보들한 보리 싹을 넣고 된장국에 함께 끓여 먹었던 홍어보리국을 먹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곽정덕 할머니(78). 할머니는 지금도 가족들과 홍어 된장국을 끓여먹는다.

지금은 남도의 모든 조세가 모여든 시절은 모두 지나갔지만 그래도 홍어의 곰삭은 맛은 두고 간 나주로 떠난다.



<3부>쪽빛에 물든 세월


영산강이 범람하며 만들어낸 습지에서 전통염색의 재료인 쪽 식물이 자라났다. 그 쪽 식물로 나주 사람들은 옷에 쪽물을 들여 입었다. 마을 아낙들은 여름이면 모두 쪽물 들인 쪽 치마를 입고 겨울이면 그 쪽 치마 안에 좀 두꺼운 천을 덧대어 입었다고 말하는 노진남 할머니(77)는 샛골 마을에 산다. 샛골 마을은 임금 진상품이었던, 실처럼 가느다란 무명천인 ‘샛골나이’를 만들었던 곳. 옷을 직접 만들어 입었던 시절, 목화를 재배해 집집마다 ‘샛골나이’을 만들면 ‘쪽쟁이’라 불리던 사람들에게 가서 파란 쪽물을 들여 옷을 입었다.

나주 사람들이 쪽물 들여 입었던 것은 영산강이 주는 풍요로운 삶에서 한 가닥의 여유였다.

여유로운 삶에서 멋을 추구했던 나주사람들의 풍류. 쪽을 재배하던 어머니가 입으셨던 쪽 치마를 간직하며 쪽물을 들이고 있는 ‘쪽쟁이’ 정관채(47)가 보여주는 신비한 쪽물의 세상으로 들어가 보자.



<4부> 땅의 노래


전남 제일의 곡창지대, 나주평야의 풍년은 전라남도의 풍년이었고 곧, 우리나라의 풍년이었다. 4-5월 나주평야에는 바람에 산들거리는 청 보리가 익어가고 있다. 보릿고개 시절에도 나주평야에는 청 보리를 비롯해 온갖 채소들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어 나주사람들의 삶은 풍요로웠다.

그런 풍요로움을 알고 일본 사람들이 영산포 선창의 배와 영산포 역전을 통해 수탈해 갔을 정도로 나주평야에서 나오는 산물들은 나주 사람들의 자랑이었다. 영산포 선창 거리 한 자리에서 40여 년 째 88이발관을 하고 있는 이발사 아저씨에게, 40년 째 나주평야야서 나오는 쌀을 도정한 가야 정미소 부부에게, 나주평야에서 봄철 나오는 돌미나리를 수확하는 아주머니들에게, 그리고 영산강변에서 제비쑥을 뜯는 할머니들에게 나주 땅에서 나는 풍요의 노랫가락을 들어 본다.



<5부> 명가의 아름다운 밥상


나주는 예로부터 아기자기한 ‘소목’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사용된 고을이었다. 우리나라 3대 반상 중 하나인 나주 소반이 만들어진 곳. 그래서 나주의 한 명가에는 아기자기한 나주 소반들과 나무로 만들어진 다양한 ‘목물’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나주에서 유일하게 몇 대를 이어서 오래된 가옥에 살고 있는 집, 남파고택. 그곳에서 84세의 종부와 32살의 손주며느리가 분주히 봄 음식을 만들고 있다. 성악을 전공해 유학 공부를 한 손주며느리는 그 동안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전통 음식을 하나하나 배운다.

담가둔 메주를 으깨 된장을 만드는 것부터 이름 몰랐던 봄 갓과 모우라는 채소를 가지고 조물조물 양념해 나주의 삼첩반상에 올라갈 반찬들을 만든다. 50년 된 나주 소반 위에 젓갈이 세 가지 이상은 꼭 올라간다는 나주 반상의 차림을 만나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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