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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전쟁 60주년 특집 한국, 터키 공동제작 다큐  
작성일 2010-06-24 조회수 12912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내일 밤 방송되는 6.25 특집 다큐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꼬레가지’를 아시나요?


한국 전쟁 60주년 특집 한국․터키 공동제작

터키 참전용사의 마지막 편지

방송 : 6월 25일(금) 밤 11시 10분 ~ 12시


연출 : 기획다큐부 이주희 PD (010-2939-8714)



  한국전쟁 60주년을 맞는 6월 25일, EBS는 터키 국영방송국 TRT와 공동 제작한 특집다큐 <터키 참전용사의 마지막 편지>를 방송한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16개국 참전국 중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군사를 파병했던 터키 참전용사들과 그들의 뒤에 남겨진 미망인들에 대한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국내에서는 공개된 적이 없는 당시 귀한 자료들과 함께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한 참전용사들의 모습도 담았다.


  1950년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많은 목숨이 스러져 간 후 6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DMZ에 흐르는 긴장감은 여전히 팽팽하다. 지구 반대편,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그의 유가족들의 마음속에서도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돌아오겠다던 남편, 아버지를 향한 기다림은 그리움으로, 그리고 평생의 슬픔으로 변한지 오래다. 전쟁의 아픔은 60년이란 시간으로 잊혀지기에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전쟁의 아픔은 여전히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이주희 PD는 “우리는 우리의 아픔만 너무 강조해왔을 뿐, 타국의 전쟁터에서 가족을 잃은 많은 이들의 아픔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다. 이 다큐를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그들의 피와 남겨진 가족들의 눈물, 그 가치를 기억해 내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값진 보상이 될 것”이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꼬레가지의 눈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터키는 그해 10월 1개 여단을 한국에 파병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렇게 한국 땅을 밟은 터키용사들은 1만 5천여 명. 유엔군 중 미국, 영국에 이은 세 번째 규모다. 희생자 수도 엄청났다. 전사 7백여 명, 부상 2천여 명, 실종 및 포로 4백여 명 등 모두 3천 2백여 명의 희생자를 냈다. 하지만 이러한 터키군의 활약은 안타깝게도 그동안 주요국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꼬레가지. 터키 참전용사들을 일컫는 말로 ‘꼬레’는 한국, ‘가지’는 전사라는 뜻이다.

지난 4월,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보훈처의 초청으로 ‘꼬레가지’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1,20대 시절 처음 한국 땅을 밟았던 터키 청년들은 이제 8,90대 노병이 되어 있었다.

가난한 최빈국 국가에서 눈부신 성장을 해온 대한민국, 그런 대한민국을 보며 매우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전우의 무덤을 찾은 노병은 눈물을 흘렸다. 친구의 묘지를 어루만지며 그렇게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미망인, 끝나지 않은 아픔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군 수는 1만 5천여 명. 이들 중 2천여 명은 전사 혹은 실종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살아남은 전사들은 부상 등의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60년 전의 한국전 참전은 명예이자 아픔이었다.

하지만 남겨진 가족들의 아픔은 더 컸다.

끝내 돌아오지 못할 걸 알면서 많은 아내들은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렸다. 그 세월이 ‘고작’ 60년.

그런 그들을 찾아다니며 한국전쟁의 흔적을 촬영하고 그 상처를 보듬는 한 사진작가가 있었다. 에티오피아, 터키 등을 다니며 한국전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을 촬영해 온 사진작가 이병용씨. 그와 함께 그리움을 한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온 미망인들을 만나 보았다.


☐ 7일 뿐이었던 결혼생활, 아이센 듀즈균

터키 남동부의 작은 마을, 이곳에 한국전쟁의 아픔을 60년째 고스란히 가슴으로 품어온 비운의 여인이 있다.

아이센 두주균, 결혼한 지 1주일 만에 남편을 전쟁터로 보낸 전쟁미망인이다.

그녀의 남편 무스타파 듀즈균은 1950년 9월 25일 부산항에 도착하여 곧장 전장에 배치되었다.

남편이 군대에 입대한 줄만 알았던 아이센 듀즈균은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남편을 기다렸고, 그런 그녀에게 1년 후 남편의 전사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스물 한 살의 신부 아이센 듀즈균, 그녀에게 허락된 결혼생활은 고작 7일 뿐이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했던 남편, 마을에 오는 모든 이들을 다 도와 줄 만큼 사람 돕는 걸 좋아했던 남편, 그런 남편이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종일관 덤덤했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평생 마을 바깥을 한 발짝도 떠나보지 못했다는 그녀를 위해 사진작가 이병용씨가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부산 UN기념공원에 있는 남편 묘지의 흙을 가져다 준 것이다.

한 줌의 흙이 되어 60년 만에 돌아온 남편을 앞에 두고 가난한 전쟁미망인은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전쟁의 아픔은 60년 전 부터 우리뿐만이 아닌, 지구 반대편 나라 터키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 마지막 편지의 주인공, 수헤일라 알도안

수헤일라 알도안 여사 역시 전쟁미망인이다.

그녀의 남편 카야 알도안 대위는 당시 명망가의 장교로 60여 년 전, 25세였던 아내와 두 딸을 남겨두고 전쟁터로 떠났다.

한국에 도착한 남편은 자주 편지를 보내왔다. 그의 편지에는 꼭 살아 돌아가겠노라고, 그러니 걱정 말고 두 딸을 잘 부탁한다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중공군을 향해 던진 수류탄이 그만 그의 손에서 터져버린 것이었다. 꼭 살아서 돌아갈 테니 내가 죽었다는 생각은 하지 말길 바라오. 우리의 두 딸을 잘 보살펴 주시오. 두 문장이 적힌 편지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그렇게 남편은 그녀의 곁을 떠났다. 이 남편의 마지막 편지는 당시 터키 신문에도 실려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60년 전 남편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그녀가 편지에 풀어냈다. 흙과 돌이 함께하듯, 바다와 파도가 함께 하듯, 당신의 곁에서 영원히 함께할게요. 먼저 떠나버린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절절히 묻어나는 편지였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떠난 남편, 그리고 그런 그가 남긴 60년 전 마지막 편지.

그것은 한국전쟁이 남긴 아픔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한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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