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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술국치 100년 특집  
작성일 2010-08-19 조회수 12335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BS, 경술국치일 관련 특집 방송


특집 <경술국치 100년, 기억 그리고 미래> (연출:김한중)

특집 <TV 평생대학> 100년의 굴레, 경술국치 (연출:이영호)


100년 전 그 시대에 대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한 재조명

치욕의 역사를 딛고 미래를 도모하기 위한 길 모색


<경술국치 100년, 기억 그리고 미래>

8.23~27 14:55-15:00(본방), 19:55-20:00(재방)

경술국치 100년 특집 <TV 평생대학> 8.25~27 19:05-19:55


연출 : EBS 홍보부 (526-2544)



EBS는 8월 29일 경술국치일을 앞두고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EBS가 국가보훈처와 공동기획한 <경술국치 100년, 기억 그리고 미래>가 23일부터 5일간, 특집 <TV 평생대학> ‘100년의 굴레, 경술국치’가 25일부터 3일간 각각 방송된다.


오는 23일부터 27일까지 낮 2시 55분, 저녁 7시 55분에 5분씩 방송되는 특집 <경술국치 100년, 기억 그리고 미래>는 <지식채널e> 제작진이 참여해 만들어졌다. 영상과 자막, 내레이션만으로 구성되며 경술국치일로부터 100년째를 맞는 해에 대한민국이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그 기억으로 우리는 어떤 미래를 도모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경술국치 100년 특집 <TV 평생대학>은 이태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초청해 ‘역사 왜곡의 시작’, ‘대한제국의 근대화’, ‘굴욕의 역사를 넘어’ 등의 주제로 특강을 펼친다. 우리 역사 왜곡의 출발점이 되었던 고종 시대를 재조명하고 그 속에 감춰진 역사의 진실을 찾아보는 한 편,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되기 까지 한국과 일본이 맺은 여러 가지 조약들의 형식과 내용을 비교분석해서 한일 병합 조약을 무효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여러 가지 정황들을 살펴본다. 



<경술국치 100년 기억, 그리고 미래>


1부 의병(구성: 박계영)  2010년 8월 23일 방송

1910년 8월 29일 치욕적인 한일강제병합으로 나라를 빼앗겼지만,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전투에 나선 항일 의병은 14만여 명에 이른다. 변변한 무기조차 없었지만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만으로 떨쳐 일어선 의병은 양반, 평민출신 가릴 것 없이 계층과 지역을 초월했다. 당시 의병의 활약상과 숭고한 정신을 되새긴다


2부 대한민국(구성: 장 현)  2010년 8월 24일 방송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후 해방까지 27년동안 항일 투쟁의 본부였다. 민주공화제를 표방한 대한민국은 험난한 독립운동의 과정 속에서도 민주, 민본, 민권을 원칙으로 삼았다. 안창호, 윤봉길, 이봉창 등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내고자 했던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


3부 영세불망탑(구성: 김이진) 2010년 8월 25일 방송

1934년 일본 도쿄 한복판에 한국의 다보탑과 똑같이 생긴 탑이 하나 세워진다. 이른바 ‘일한합방기념탑’. 탑에는 한일강제병합에 기여한 친일파 363명의 이름이 새겨져있고 강제병합이 한국측의 희망에 의해 이뤄졌다는 얼토당토 않은 기록도 남아있었다. 이 탑은 1970년대 도시 재개발로 인해 철거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철거에 불과하다. 현재 이 탑은 일본의 한 신사에 분리, 보관되고 있다.


4부 할머니의 이야기(구성: 정연숙)  2010년 8월 26일 방송

25세 회사원인 박선주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역사탐구반 활동의 일환으로 종군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징용된 할아버지들을 취재했던 기억이 새롭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면서 박씨는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와 마주치게 되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박씨는 과거를 모른 채 미래로 나아갈 순 없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다.


5부 네 번째 묘(구성: 곽선희. 2009년 9월 28일 방송분 앙코르) 2010년 8월 27일 방송

효창공원에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묘역이 나란히 마련돼 있다. 이른바 ‘삼의사 묘’ 옆에 비석도 없는 네 번째 묘가 있다. 바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돌아올 것으로 믿고 미리 마련해놓은 ‘허묘’이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맞는 올해까지 안 의사의 유해는 찾을 길이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경술국치 100년 특집 <TV 평생대학> ‘100년의 굴레, 경술국치’


이태진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학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 석사

 - 한국학 중앙연구원 명예문학박사

 - 동북아역사재단 이사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관리실장

 - 現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수상    - 월봉 학술 저작상

         - 홍조근정훈장

         - 3.1 문화상 학술상

저서 『한국사- 메이지 일본의 한국 침략사』『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고종 시대의 재조명』『동경대학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등 다수


제 1부. 역사 왜곡의 시작 (8월 25일)

혹시 아직도 조선을 은둔국으로, 고종은 유약하고 무능한 왕으로 알고 있진 않으신가요? 우리 근대사의 출발점이 된 대한 제국은 결코 역사의 흐름에서 비켜서 있는 은둔국도 아니었다. 우리 근대사가 이렇게 부정적으로 비춰지기 시작한 건 일제 강점기 일본의 영향이 크다. 실제로 고종은 1860년대부터 일본 등과 수교하기 위한 자주적 노력을 보였다. 고종은 청년 시절 개방과 개화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일본·미국·영국·독일 등과 잇따라 수교통상조약을 체결했고 서양의 우수한 기계문명을 빨리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근대사의 왜곡은 운양호 사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운양호 사건이 경술국치의 도화선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 사건의 이면에는 조선의 소통 노력을 무시한 일본의 잘못도 들어있다. 우리 역사 왜곡의 출발점이 되었던 고종 시대를 재조명하고 그 속에 감춰진 역사의 진실을 찾아본다.

 

제 2부. 대한 제국의 근대화  (8월 26일)

1880년대 초반, 고종은 우수한 인재를 뽑아 개화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 고종은 일본의 서구 문물의 수용 실태를 조사하는 12명의 사찰단을 구성했다. 하지만 이 시도는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나라의 방해를 받아 그 뜻이 제대로 관철 될 수 없었다. 이렇게 시작한 대한제국은 금융제도를 재정비하고 철도와 전기시설의 확충이나 광산 개발과 같은 근대화 사업으로 이어진다. 대한제국의 국토개발 사업을 비롯한 경인선 철도 부설 공사등 근대화를 위한 노력을 살펴보고 이 시기 서울개조 사업의 현황을 살펴본다.


제 3부. 굴욕의 역사를 넘어  (8월 27일)

1992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대한 제국의 칙령과 조칙, 등의 자료를 검토하는 도중, 1907년부터 1908년까지의 문서 중 순종이 서명한 문서를 살펴보면 각기 다른 서명이 대 여섯 개가 발견되었다. 또 1905년 한국의 운명을 좌우한 조약은 조약의 명칭이 들어갈 자리가 비어있고, 조약이 갖춰야 할 필수 사항들이 빠져 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되기 까지 한국과 일본이 맺은 여러 가지 조약들의 형식과 내용을 비교분석해서 한일 병합 조약을 무효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여러 가지 정황들을 살펴본다. 아울러, 한일 관계가 과거의 역사를 넘어 동북아 평화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과제와 안중근 의사의 ‘동양 평화론’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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