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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국서 화제일으킨 CCTV제작 역사다큐 '대국굴기' EBS 방송  
작성일 2007-01-17 조회수 19397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13억 중국인을 충격에 빠트린 화제의 다큐 대국굴기(大國崛起), EBS서 방송 EBS 특별기획『대국굴기(大國崛起)』
중국 CCTV서 3년에 걸쳐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사상.문화의 영향력, 정치제제.제도의 개혁이 대국의 흥망 결정” 2007 대기획 ‘대화’ 통해 발전적 미래상 제시하려는 EBS 의지 반영
방송 : 1월 29일~2월 10일 월-토 밤 11시 ~ 11시 50분
담당 : 김경아 차장 (526-2571)
21C 세계 제1 강대국, 그 왕좌로 향하는 ‘역사의 문’이 열린다. 화제의 다큐멘터리 『대국굴기 大國崛起』 EBS에서 전격 방송 ○ 지난 해 13억 중국인을 충격에 빠트렸던 역사다큐멘터리 『대국굴기 大國崛起』가 EBS에서 방송된다. EBS는 세계 제1 강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비서 『대국굴기 大國崛起』를 2007년 1월 29일부터 2월 10일까지 매주 월~토 밤 11시 총 12회에 걸쳐 방영할 예정이다. 2006년 11월 13일, 13억 중국인들은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여파로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 국가적 폭풍의 핵은 바로 중국 국영방송(CCTV)에서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대국굴기 大國崛起』. 세계를 호령했던 9개의 강대국, 그 역사를 돌아본 다큐멘터리 『대국굴기 大國崛起』는 미래를 준비하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역사와의 대화를 제시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방영 결정은 2007년 大기획의 주제를 ‘대화’로 정하여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발전적 미래상을 제시하려는 공영방송 EBS의 야심에 찬 의지의 반영이다. ○ 이 대작 다큐멘터리의 방영권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 여러 방송사 관계자들이 치열한 정보전 및 물밑 협상을 벌이며 노력하였으나, 세계 각국 배급사들과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온 EBS가 그동안의 노하우(know how)와 노웨어(know where)를 활용하여 본 프로그램의 독점 방영권을 확보했다. 그동안 한류열풍으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중국전역에 몰아쳤던 것에 비해 한국은 중국의 대중문화에 대해 무지했던 상황. 때문에 중국의 일부 여론에서는 중국 의 대중문화 수입에 무관심한 한국에 대해 적대감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중 문화교류의 일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중국이 제작한 12부작 다큐멘터리 <대국굴기 大國崛起>의 방영결정은 중국과 한국 간 문화적 대화의 시도이기도 하다. 중국 국영방송(CCTV)이 3년에 걸쳐 준비한 역사 대작 이 프로그램은 ‘대국은 어떻게 일어섰는가’라는 의미의 『大國崛起』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15세기 이후 세계를 호령했던 9개 대국(大國)의 발흥과 패망의 역사를 돌아보며, 이들이 당시 세계적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담아낸 역사 다큐멘터리이다. CCTV 제작팀이 3년에 걸쳐 9개국의 역사현장과 박물관 등을 찾아가 제작한 대작으로 제작팀은 베이징대학 역사학과 쳰청단(錢乘旦) 교수를 비롯해 수도사범대학 류신청(劉新成) 교수, 영국 노팅검 대학의 쩡용녠(鄭永年) 교수 등 중국 안팎의 각 분야의 학자ㆍ전문가 100여명을 찾아 자문을 구했다. 13억 중국인들이 주목한 프로그램 CCTV의 자존심이 묻어나는 생동감 넘치는 화면, 역사적 고증과 전문가의 해설이 함께 한 충실한 내용 덕분에 이 프로그램은 방영직후 중국 시청자들로부터 “2006년 중국 사회를 뒤흔든 최고의 TV 프로그램”이란 찬사를 받으며 중국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국굴기』는 역사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12회 방송이 끝나자 “재방송하라”는 시청자의 요청이 쇄도했다. 결국 CCTV 측은 지난 11월 27일 이 프로그램을 재방송했다. 방송 이후 출시된 6개짜리 DVD는 12월 20일 대도시 서점에 깔리자마자 2~3일 만에 매진되었으며 같은 내용을 정리해 출시된 8권의 책 역시 순식간에 1만 질이 동이 났다. 왜 13억 중국인들은 이처럼 뜨거운 반응을 보였던 것일까? 프로그램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제 1편 ‘海洋時代 포르투갈과 스페인, 해양의 시대를 열다’는 15~16세기 유럽에서 가장 먼저 탄생한 두 민족국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이야기다. 제2편 ‘小國大業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 세계를 움직이다’는 국토 면적 베이징의 2.5배, 습지의 나라 네덜란드가 17세기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된 비결을 찾아보고, 제3편 ‘走向現代 영국, 현대화의 선봉에 서다’는 16세기 초까지 주목받지 못하던 작은 섬나라 영국이 앞선 현대화 노력을 통해 유럽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 과정을 따라간다. 제4편 ‘工業先聲 영국, 세계 최초의 공업화 대국’은 과학정신과 정부의 발명 지원 등을 통해 세계 최초 공업화 대국을 이뤄 세계 패권을 거머쥔 영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5편 ‘激情歲月 프랑스, 혼돈 속에서 일어서다’에서는 프랑스가 대혁명을 거쳐 어떻게 현대 민주사회의 기반인 자유ㆍ평등ㆍ박애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는지를 탐구한다. 제 6편 ‘帝國春秋 독일, 유럽제국을 이루다’는 19세기 프로이센의 철혈(鐵血) 재상 비스마르크가 독재적인 방식으로 공업 발전과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 전 국민 의무교육을 실시해 이룬 업적을 다루고 있다. 제7편 ‘百年維新 일본, 아시아 강국으로 향한 백년간의 유신’은 아시아의 섬나라 일본이 어떻게 아시아 최강을 넘어 서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발전했는지를 탐구한다. 제8편 ‘尋道圖强 러시아, 강대국을 향한 피의 항해’는 러시아 지도부의 강력한 사회변혁 의지를 통해 이뤄낸 문명, 경제 발전의 힘과 그 어둠을 담아내고, 이어 제 9편 ‘風雲新途 소련, 풍운 속의 새로운 길’에서 1917년 10월 혁명 후 탄생된 소비에트 정권과 러시아 경제의 흥망을 다룬다. 제10편과 제 11편에서는 ‘新國新夢 미국,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꿈’와 ‘危局新政 미국, 세계 제1강국을 이룬 새로운 도전’을 주제로 독립선언이후 100여 년 만에 세계 제 1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미국의 모습을 살피고, 미국이 경제, 정치적 위기를 이겨내고 20세기 세계최강국으로 부상한 이유를 분석한다. 『대국굴기』 대장정의 마지막 편 ‘大道行思 21세기 대국의 길’에서는 9개 대국의 흥망 속에서 ‘교훈’을 찾고 있다. 500여 년 동안의 세계 강대국들의 발전과정을 돌이켜 보고 대국이 궐기했던 핵심적 요소를 논의해 보면서 그 힘의 수수께끼를 함께 읽어 내자고 권한다. 더불어 역사적으로 세계를 호령했던 대국이 그 힘을 잃고 쓸쓸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던 뒷모습을 돌아보면서 전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영원한 패권국은 없다’는 교훈을 되새긴다. ○ 21세기를 이끌어갈 대국은 어느 국가가 될 것이며 대국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아직 그 해답을 알 수 없지만 EBS 특별기획 『대국굴기 大國崛起』에서 제안하는 ‘역사와의 대화’에 동참하면서 ‘평화와 공동의 번영 그리고 화합’ 이라는 세계 공동의 목표, 그 불변의 메시지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 각 부 주요 내용 ] 1부: 해양시대(海洋時代) - 포르투갈,스페인 15세기 유럽에서 가장 먼저 탄생한 두 민족국가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국가역량에 힘입어 항해모험을 펼쳤다. 엔리케 왕자의 진두지휘 하에 포르투갈의 대를 이은 항해가들은 대서양에서부터 남쪽으로 희망봉을 끼고 인도에 달하는 항로를 개척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자금 지원을 받아 콜럼부스는 스페인을 대표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인류 최초의 지구순환 항해도를 완성한 후, 당시까지 분리되어 있던 세계는 지리적 대발견으로 완전한 세계로 연결되었고, 세계를 넘나드는 대국들도 이로써 탄생하게 되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서로 경쟁하면서 세계를 양분하고, 새로운 항로와 식민약탈을 기반으로 권력을 장악하여 전세계에 식민제국이 널리 퍼지게 되었으며, 16세기 상반기 무렵에는 그 세력이 최고조에 달해 제1 시기의 세계 최강국들이 되었다. 그러나 수탈체제를 통해 신속하게 일어난 이 두 나라는 전쟁 중 자산을 낭비하였고, 상공업을 발전시키지 못해 급속도로 성장한 것과 같이 빠르게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결국 세계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2부: 소국 대업(小國大業) - 네덜란드 서북유럽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베이징시의 2배 정도에 불과한 네덜란드는 조수가 넘나드는 습지와 호수라는 불리한 여건에서도 물고기를 잡아 이루어낸 가계를 중계무역으로 전환시켰고, 저렴한 가격의 선박 제조 및 유리한 지리적 위치와 굳은 상업적 신뢰를 바탕으로 중간상에서 원양항해의 투사로 변해갔다. 날로 부유해지는 네덜란드 시민들은 귀족들에게서 도시자치권을 사들였고, 상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지방연합 공화국을 만들었다. 그들은 세계 최초로 공동 출자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당시 전세계 무역의 절반을 독점했고, 세계 최초의 주식거래소를 설립해 자본시장을 탄생시켰다. 현대적 은행을 최초로 만들어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대적 신용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러한 일련의 현대 금융과 상업제도의 구축을 통해 17세기는 네덜란드의 세기가 되었다. 국토 면적、인구 등 천연자원이 부족해, 17세기 말, 네덜란드는 세계 각지의 패권을 잃어갔지만, 지금까지도 네덜란드인의 삶은 여전히 부유하고 그들이 세운 상업원리는 여전히 전세계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3부: 현대화를 향해(走向現代) - 영국(16~17세기) 바다를 사이에 두고 유럽대륙과 마주보고 있는 영국은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세계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중세기부터 현대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강력한 군주제가 관건이 되었다.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해양탐험과 무역을 장려하고, 낙관적 통치이념과 사회적 문제들을 타협적 수단으로 처리하면서 변방의 섬나라를 찬란한 발전 시기로 인도 하였다. 그러나 뒤를 이은 찰스 1세 국왕은 군권신수설을 신봉해 13세기 대헌장이 규정한 '국왕은 반드시 법률 규정을 준수해야한다'는 것을 위배하고, 화의 기간 중 4년간에 걸친 내전을 벌였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사형에 처해졌다. 결국, 영국은 명예혁명을 통해 군주입헌제를 설립하고 현대사회로 나아가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상대적으로 관대한 사회분위기는 영국의 경제발전에 좋은 여건을 마련해주어, 산업혁명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동시에 이 섬나라가 세계무대 중심위치로 나아가도록 만들어 주었다. 4부: 공업 우선(工業先聲) - 영국(18-19세기) 영국의 식민 확장과 해외시장의 성숙으로 상품 수요량이 점점 확대되었고, 수공업 공장의 생산으로는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게 되었다. 발명과 창의를 장려하기 위해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특허법>을 제정했다. 이런 상황은 영국이 전 국민이 발명과 생산, 무역에 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후, 과학정신은 영국사회로 침투해 들어갔고, 와트가 증기기관으로 가장 핵심적인 동력문제를 해결한 후, 영국의 공업화는 놀라운 속도로 전면적으로 전개되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으로 자유경쟁의 시장규칙을 제시한 후 영국인들은 자국의 강력한 공업능력으로 자유무역을 추진하고 글로벌시장을 개척했다. 각종 조건의 성숙으로 영국은 세계 최초의 공업화 대국이 되었다. 이 기간 영국은 강력한 이웃인 프랑스를 물리치고 세계 최대의 식민제국이 되었다. 19세기 중후반부터, 식민지는 오히려 대영제국의 부담이 되기 시작했고, 자유시장경제의 폐단도 점차적으로 드러나 영국의 발전은 느려지게 되었고, 결국 세계 패권국가주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5부: 격정의 세월(激情歲月) - 프랑스 17세기, 국왕 루이 14세는 프랑스에서 유럽대륙 최강의 절대왕권을 수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프랑스를 경제, 문화, 군사력 모두 역사상 최강의 위치에 올렸다. 문화의 도시 파리도 그 시기에 탄생되었다. 루이 14세의 문화예술에 대한 애착은 국민들의 사상문화의 숭배의 풍토를 조성했고, 전 유럽으로 퍼지기 시작한 계몽사상이 프랑스에도 널리 전파되었다. 계몽사상은 중세기 유럽의 신학으로부터의 속박을 타파하고 이성적 문호를 개창했으나, 프랑스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3계층간 모순이 날로 심각해져 갔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폭발, <인권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유럽 각 군주국가의 몰락은 프랑스에 극단적 사건과 장기적 동요를 초래했다. 이 시기 나폴레옹이 '대혁명의 아들'의 이미지로 나타나, 유럽을 정복해 나가면서 또다시 프랑스를 정상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무력 확장만으로는 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도록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2차대전까지, 프랑스는 독립, 자주의 노선으로 과거의 영광을 다시 회복했다. 6부: 제국 춘추(帝國春秋) - 독일 유럽 각국이 민족국가를 형성할 때, 유럽 대륙 중부에 위치한 독일은 분열 상태에 놓여 있었고, 이로 인해 독일 국민들은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경제를 통일함으로써 정치 통일을 이루자는 경제학자 린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관세동맹이 설립되고 무역장벽이 무너졌으며 독일경제 발전이 가속화 되었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유럽열강의 틈새에서 생존을 도모하며, 외교적으로 충분히 준비를 마친 후 3차례의 대외전쟁을 거쳐 1871년 독일통일을 이루어내었다. 그는 유럽대국의 균형원칙을 준수, 독일이 평화롭게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교육, 과학기술을 중시해 온 독일은 신속하게 2차 산업혁명의 선봉에 섰고, 30여 만에 영국을 추월하고 유럽 최대 세계 2대 경제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발원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다시 분열되었으나,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을 통해 독일은 평화적 방식으로 국가 재통일을 이뤄냈다. 7부: 백년 유신(百年維新) - 일본 150여 년 전 미국 함선 4척의 위협으로, 장기간 통상무역을 거부했던 섬나라 일본은 전쟁을 거치지 않고 나라를 개방하는 길을 선택했다. 외부 압력은 국가 내부변혁의 동력이 되었고, 미국 함선 진입 15년 후인 1868년 메이지 유신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세계에서 지식을 얻는다’는 유신강령의 지도 아래, 일본은 정부 고위관리로 이루어진 사절단을 유럽과 미주 각국으로 보내 시찰을 시켰다. 그 후 일본은 국가 공업화를 시작했고, 다이큐호는 취사선택 방식으로 식민흥업을 추진하고, 문명개화 했으며, 대량의 국영공장을 건설하고, 민영기업을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일본 현대기업의 아버지 시부자와 에이찌가 관직을 버리고 상업에 종사한 전설적 경험은 그 시대의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다이큐호의 계승자 이토 히로부미는 국내 자유민권운동의 목소리에 순응해 유신성과를 공고히 하는 제1헌법을 제정했지만, 동시에 천황이 일본 군국주의를 공고히 하는 바탕이 되었다. 다른 전제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일본은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군국주의의 꿈을 종식하였다. 2차대전 후 일본은 <평화헌법>을 기초로, 미국의 지지 하에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했다. 이로써 1968년 메이지 유신 100년 되던 해 미국과 소련의 뒤를 이은 경제강국이 될 수 있었다. 8부: 강대국을 향한 모색(尋道圖强) - 러시아 1679년 러시아 피터 대제는 유럽각국을 돌아다니며 학습을 하고, 귀국 후 강경한 수단으로 사회변혁을 추진했다. 의식주부터 과학교육, 상업활동, 군대건설까지 비민주적 방식으로 러시아의 문명발전을 추진했고, 심지어 개혁을 반대하는 황태자를 직접 처벌하기도 했다. 강적 스웨덴을 물리치고, 유럽의 새로운 수도 상테페테스부르를 건설하도록 명령했다. 그의 개혁을 계승한 예카테리나 2세 여왕은 유럽의 계몽사상을 들여오고, 교육을 중시하였으며, 기초법률 제정을 시도했다. 여왕의 업적은 결국 영토확장에서만 나타나, 18세기 후기, 러시아 영토는 유럽、아시아、미국을 넘는 대국이 되었고, 유럽 사무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농권제는 러시아가 경제, 기술영역에서 공업화를 이룬 영국·프랑스 등 국가에 비해 낙후되게 만들었다. 전쟁 - 혁명 - 개혁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가운데 전통과 현대 사이를 배회하던 러시아는 서서히 자신들만의 사고방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톨스토이 등 러시아 지식인들은 국가의 정체성을 찾기를 희망했고, 이러한 노력으로 러시아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명을 창조해내게 되었다. 9부: 급변하는 정세 속의 새로운 노선(風云新途) - 소련 1917년 소비에트 정권은 10월 혁명 후 탄생되었다.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노선을 시행하면서 레닌은 현실적 필요에 따라, 전시 공산주의 정책을 신경제정책으로 전환시켜 농민을 보호하고, 헤머, 포드 등 외국 투자자들을 끌여들여 소련 경제를 점차 회복시켰다. 레닌 사망 후 폐쇄와 전쟁위협에 직면한 국제환경에서, 스탈린은 공업화를 가속화시키기로 하고, 계획경제를 도입,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켰다. 두 차례에 걸친 5개년 계획을 완성하면서 소련은 단번에 산업 강국으로 도약했고, 당시 경제위기에 놓여있던 유럽과 미주 대륙 각국을 놀라게 했다. 이런 산업화의 괄목할만한 성과는 소련의 지령적 계획경제 모델의 폐단까지도 가릴 수 있었다. 곧 이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 신공업의 위력과 소련 국민의 희생이 전쟁의 승리를 이끌어 냈고, 책임 있는 대국이 지녀야할 지위를 갖게 만들어 주었다.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소련의 성공은 전 인류에 새로운 경험과 사고를 제공하였다. 오늘도 러시아인들은 민족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 민족의 미래는 기대해 볼 만하다. 10부: 새 나라, 새 꿈(新國新夢) - 미국(17C-19C) 1620년 메이플라워호가 영국 청교도 100여 명을 싣고 북미대륙에 도착했다. 대륙에 오르기 전에 서명했던 <메이플라워호 공약>에 따라, 청교도들은 신대륙에서 자치 생활을 했다. 100여 년 후, 대영제국이 세금 징수를 강행으로 식민지 독립전쟁이 시작되었고, 1776년 북미 13개 식민지는 미합중국 독립을 선언했으며, 1787년 미국 발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성문헌법을 제정하고 중앙정부를 설립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대량 이민이 유럽 선진기술을 가져왔고, 이 기술을 바탕으로 미국은 신속하게 제1차 산업혁명을 완성했다. 미국은 신속하게 발전했지만, 제헌회의에서 해결하지 못한 노예제 문제가 결국 1860년 내전을 야기 시켰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에서 북부를 인솔하며 승리를 거두었고, 이로써 국가통일을 이룩하고 강력한 중앙정부를 이루었다. 정부 추진 하에 한 세기를 지속해온 서부진출 역시 성과를 보였다. 이후 에디슨의 전기발명으로 미국은 그 분야에서 앞서 나가게 되었고, 발명과 창조의 제도적 보장은 미국의 지속적인 발전 동력이 되고 있다. 1894년 미국은 세계 제1의 경제 강국이 되었다. 이 젊은 나라는 제2차 산업혁명의 선봉에 서 있었다. 11부: 위기의 뉴딜 정책(危局新政) - 미국(20세기 초- 2차대전 종식) 자유경쟁은 미국이 19세기말 20세기 초 황금시대를 맞게 해주었다. 독점기업과 대형그룹이 연이어 출현했는데, 첫 트러스트 그룹인 록펠러의 스탠더드 석유회사는 그 중 전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점도 빠른 속도로 두드러져 독점은 중소기업 도산을 야기하고, 기회평등을 상실케 했으며, 사회는 심각하게 양분화 되었고, 노사모순이 격화되었다. 미국인은 이러한 경제사회 발전모델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1901년 취임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진보주의 사상과 사회의 요구에 따라, 반독점과 노동자 권익 입법보장법류 등을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정부가 경제에 관여했다. 그 후 포드 어셈블리 라인의 탄생, 전기시대 신기술과 발명의 출현 및 세계대전으로 인한 경제 활황 등이 미국 경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1929년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가 경제위기에 직면했을 때, 미국의 손실 또한 참담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정부의 경제 통제의 폭을 넓히고, 일련의 뉴딜 정책들을 통해 미국이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만들었고, 정부의 보이는 손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함께 경제에 작용하는 혼합경제의 모델을 창출해 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 역사상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 미국은 정치, 경제, 과학기술, 군사 등 영역에서 세계 제1강국이 되었고, 세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12부: 정도를 위한 사고(大道行思) (1) 강대국의 수수께끼 500여 년 동안의 각 세계 강대국 발전과정을 돌이켜 보고, 대국 궐기의 핵심적 요소를 논의해 보면 한 나라만의 특정 상황에 맞는 요소들도 있겠지만, 일부 공통된 요소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과학과 교육중시, 자국 국정에 맞는 정치경제 제도 건설, 단순히 타국의 길을 모방하는 것이 아닌 자국의 상황에 맞는 정책도입, 국가역량 주도 하에 현대화 진전의 가속화 등이다. (2) 대국의 현혹 역사적으로 대국이 식민지 약탈과 무력 패권으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 결말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전쟁으로 문제점을 타파하고 재건하고자 기도하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독일의 흥망이 가장 좋은 예다.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영원한 패권 국가는 없으며, 대국의 흥망이 교체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법칙이다. 한 예로 영국 역시 2세기 동안이나 전 세계를 주도하였으나 이러한 역사적 법칙을 피해 갈 수 없었다. (3) 대국의 길 2차 세계대전 후 각국은 이성적으로 대국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다국적 기업을 통해 경제 발전을 실현했고, 미국은 정보혁명과 하이테크기술 영역에서 국가 지속발전을 이루었다. 글로벌 시장이 세계를 긴밀하게 연결시켰고, 대국 간의 상호 호응, 협력과 의존관계가 강화되기 시작했으며, 역사적 안목과 전략적 지혜를 가진 국가는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경제 글로벌화와 지역 블럭화의 시대조류 속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손을 잡고 시작한 유럽의 새 질서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고, 유럽연합(EU)은 평화롭고 협력된 국가발전모델에 시대적 획을 그었다. (4) 대국의 사고 이상적 대국에 대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강대국이라는 화제에 대한 논의는 아마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21세기의 변화가 대국을 어디로 이끌고 갈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영원히 평화롭고 공동 번영하는 화합세계가 인류 공동노력의 방향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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