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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대의 초상 - 환갑 앞두고 2세 맞는 한대수의 고백  
작성일 2007-03-09 조회수 17912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환갑 앞두고 2세 맞는 한대수의 고백 EBS 『시대의 초상』‘한대수’ “나를 잊었던 조국에 섭섭한 맘 없어” “환갑을 앞두고 기다리는 2세... 내 아버지 같은 아버지는 되지 않을 것”
방송시간 : 3월 13일(화) 밤 10시 50분 ~ 11시 40분
문의 : 김 현 팀장 (526-2701)
○ '한국 모던 록의 창시자'한국 최초의 히피'한국 포크 록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가수 한대수. 그리고 그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신학대 초대학장을 지낸 할아버지, 피아니스트 어머니, 실종된 핵물리학자 아버지 등 ‘남다른 출생과 가족사’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환갑을 앞두고 2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한대수가 EBS 다큐멘터리 『시대의 초상』에서 미국과 한국을 오갈 수밖에 없었던 평범치 않은 가족사, 20대에 겪어야 했던 음악에 대한 고통과 좌절,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로서의 고백 등을 털어놓는다. “나의 10대엔 베이스캠프가 없었다”... 혼란 속의 학창시절 당시로서는 남부러울 것 없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한대수. 하지만 그의 인생은 3살 때 미국으로 유학간 아버지, 한창석의 실종 이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20대 나이의 어머니가 재가한 후 조부모의 손에서 자란 그는 10살 때 뉴욕으로, 또 중학교 시절 다시 한국으로, 또다시 고등학교 시절 실종됐던 아버지를 찾아 뉴욕으로 떠나야 했다. 문화적 쇼크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가운데 태평양을 가로지르며 보낼 수 밖에 없었던 학창시절을 그는 그의 1집 앨범의 타이틀처럼 ‘멀고 먼 길’이었다고 말한다. 채 스무살도 안돼 한의 정서를 가진 노래를 만들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족사가 이유일 것이라고 평하고 있다. “17세에 만난 아버지는 내가 생각했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뉴욕에서 17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내가 생각했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마음 속에 괴물이 꿈틀거리니 그것을 표현해야했다”고 한대수는 고백한다. 그리고 그 당시의 좌절과 고통은 음악으로 태어났다. “‘희망의 나라로’ 는 개인적인 슬픔도 되지만 태평양 건너에 있는 내 나라 바로 고통받고 있는 한반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했고, 사진학교를 다녔을 뿐, 음악에 대한 공부는 전혀 해본 적이 없다. “음악을 좋아하던 할아버지, 피아노를 쳤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을 지도 모르고 당시 60년대 록의 전성기를 누렸던 뉴욕에서 자연스레 음악을 하게 된 것일 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나를 잊었던 조국, 섭섭하진 않아” 1968년 서울에선 보기 드문 장발을 휘날리며 통기타 하나 들고 희망의 나라를 노해하며 한국 음악시장에 ‘모던포크’라는 새로운 돌풍을 일으켰던 한대수. 그러나 서슬 퍼런 1970년대 한국 정부는 그의 음악을 대중으로부터 떼어놓았다. 그리고 한국은 한대수를 잊었다. 뉴욕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1997년, 태평양 건너에서 한통의 팩스가 날아왔다. 일본의 록스타 카르멘 마키와의 후쿠오카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한국은 다시 그를 불렀다. 뒤늦게 알아준 한국에 대해 섭섭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하는 일이 꼭 사랑받고, 각광 받아야 한다, 보장받아야 한다는 생각 안한다. 사는 것 자체가 보장이 없는 삶이잖아요” 하며 웃어 넘겼다. “환갑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2세” 스무살 차이나는 부인 옥사나가 올해 여름이면 아이를 낳는다. 환갑상을 받을 때, 아이의 돌잔치를 하게 된 한대수에게서 우리는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 한 아이의 아버지를 발견했다. “돈, 우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데 꼭 있어야지... 어떻게 대학까지는 보내야 하는데” 한대수는 벌써부터 2세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절대로 나의 아버지처럼은 되지 않겠다”며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고백하는 한대수는 ‘아이에게 많은 사랑을 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준비하고 있다. 음악이 좋아 음악을 했고, 음악으로는 먹고 살 수 없을 것 같아 공무원으로 때로는 사진작가로 생업에 몰두했던 한대수. 그가 털어놓는 그의 음악과 그가 살았던 시대,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시대에 대한 기대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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