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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대의 초상' 광대의 길 50년 김덕수  
작성일 2007-05-04 조회수 16855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전통을 붙잡느니, 차라리 이단이 되겠다” EBS『시대의 초상』‘광대의 길 50년 김덕수’
전통을 살리기 위해 재즈, 클래식과 협연하는 국악인 라이벌의 죽음을 둘러싼 세간의 오해에 대해 답해 꽹과리, 북, 징, 장고와 함께 한 길 위의 50년 음악 인생 담아
방송 : 5월 8일(화) 밤 10시 50분 ~ 11시 40분
문의 : 526-2698
1957년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처음 조치원 난장에 선 이후로 50년, 1978년 공간 사랑에서 세 명의 친구들과 사물놀이 공연을 한 이후로 30년. 김덕수 그의 이름은 국악계에 있어 보통명사다. 그 보통명사는 영광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이면에는 오욕도 있고 배신도 있다. 그는 고맙게도 아직까지도 전통이 유의미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순수하여야할 전통을 부정하게 혼합했다는 혐의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전통을 가지고 생존해야하는 그는 기꺼이 재즈, 클래식 등과 협연한다. 힙합을 하는 아들과 함께 랩을 선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갸웃? 한다. 당신이 고수하는 전통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시대는 다르다는 거죠. 우리가 스페인에 가면 스페인의 플라맹고와도 만나서 해야 하고 일본에 가면 일본의 노하고도 해야 하고 중국에 가면 경극과도 같이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것은 우물 안의 개구리로 모두가 인정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 버렸겠지요. 우리것화 하는 거고. 그렇다면 재미있어하죠. 아이들도. 학생도. 미국사람도. 유럽 사람도. 그러니까 그것을 이단으로 본다면 할말 없죠. ” 죽지않고 했어야죠. 열심히 살아서 그 천재성을. 그 음악성을. 보여줘야죠. 그동안 7000번 가량의 공연이 있었고 수없이 많은 인터뷰와 방송 출연을 했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받는 질문이 상쇠 김용배의 죽음이다. 가장 듣기 싫고 또 소용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김덕수에게 늘 붙어다니는 꼬리표다. 세간에 알려진 바로는 두 사람은 라이벌이었고 음악적 갈등이 상당했으며 그것으로 초창기 사물놀이 라인업이 깨졌고 그것이 김용배의 죽음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것.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그것을 오도하는 건지 재미있는 거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나하고 음악적 갈등. 음악적 경쟁을 하듯이 얘기를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지금도 도저히 용납을 못해요. 전혀 개인적인 갈등도 없었고. 음악적 갈등도 저는 없었 어요. 왜? 꽹과리 징 장구만 치고 만난 사이가 아닙니다. 김용배와 함께 실과 바늘처럼 살려고 어떠한 시간대가 있었느냐 하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찌 그렇게 일방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시대의 앞잽이? 그건 아무나 하나? 50년대 말 60년대 초엔 남사당을 따라 전국에 공연을 다녔고 남사당이 사라지면서부터는 이동 선전반을 따라 약을 팔러 다녔고 무역 진흥 시대엔 해외를 돌아다니며 국산품을 팔러 다녔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 앞에서 평양에서 재주를 선보인 그는 스스로를 앞잽이 인생이라 부른다. 회한이 없느냐는 질문에 뜻밖에 반색한다. “저는 영광이죠. 저는 늘상 저에게 이일을 하게끔 해준 모든 분들게 감사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뭐 내가 하고 싶다고 그 일이 됐겠습니까? 아유 그거야 남이 인정하니까 앞잡이가 되는 거지 내 스스로 앞의 리더가 될 수 있습니까? 그렇잖아요. 그건 남이 인정하는 거고 남이 세워 주는 거죠.” 사물? 못말리는 거지 그리고 꽹과리 북 징 장고를 김덕수 앞에 세운다. 괭과리 북 징 장고는 영원하고 다만 김덕수의 몸을 빌렸을 뿐이라고 말한다. “사물의 시대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물의 시대는 영원해요. 그것의 가장 기본을 이루는 것이 리듬이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도 못 말리는 거예요. 그것은 우리 민족이 가장 옛날부터 확실하게 쓰여 졌던 악기이자 수단이었는데 그것을 누가 어떻게 말려요.” 지금도 집문을 나서면 울렁거린다. 천상 그는 광대다. 아버지 손을 잡고 ‘행복하게’ 집문을 나섰던 5살 이래로 그는 집을 떠날 때마다 울렁거린다고 한다.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한 그리움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미안함...길에서 쉬고 길에서 싸워온 그의 인생 50년을 들어본다. “두근거린다는 것 보다는 울렁댄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두근거리는 것 보다는 울렁대는 항상. 그리고 흥분되고.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항상 뭔가 섭섭하고 어떤 아련한 무슨 기대? 그리움? 이런 것들이 항상 존재하는 거예요.” 진경산수를 처음 만들었던 정선이 한 세기를 풍미했고, 또 추사체를 만든 김정희가 그랬듯이 당연하게 혹은 운이 좋게도 그는 충분히 김덕수의 시대를 살고 있다. 50년을 조명하는 여러 가지 작업이 있었다. 끝도 없이 나열되는 영광의 이력 사이사이를 헤집고 시대의 초상에서 그의 50년을 새롭게 물어보았다. 자신의 시대를 맘껏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할 수도 없는 얘기를 어렵게 해주었다. 더 이상 모던할 수 없는 시대에 오래된 것을 붙잡고 산다는 것의 낙인 혹은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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