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변화를 선도하는 EBS
프로그램의 최신소식에서 교육 채널 소식까지 EBS의 보도자료를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게시판 보기 페이지입니다.
제목    '시대의 초상' 영원한 농구인, 박찬숙  
작성일 2007-08-11 조회수 16531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쉰 살이 넘었어도 나는 농구얘기가 가장 즐겁다” EBS『시대의 초상』영원한 농구인, 박찬숙
“대통령 축전은 보통이고, 청와대를 내 집 드나들 듯 했죠” “화려한 스타도 좋지만 ‘딸’, ‘아내’, ‘엄마’로서의 평범한 타이틀도 소중해”
방송 : 8월 14일(화) 밤 10시 50분 ~ 11시 40분
연출 : 교양문화팀 김훈석 PD(526-2697)

한국 여자 농구계의 대모, 박찬숙이 EBS 인터뷰 다큐멘터리 [시대의 초상]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70, 80년대 한국 스포츠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농구 선수 박찬숙.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70,80년대 한국 여자 농구의 대들보, 간판스타, 여러 가지 네임이 많았지만 영원한 농구인입니다. 박찬숙입니다. 반갑습니다.” 최연소 국가대표, 아시아 여자농구대회 4연패, 구기종목 사상 최초 올림픽 메달 획득 등 여자 농구사에 수많은 기록을 남긴 박찬숙은 지난 6월, 또 다시 한국 농구계에 뜨거운 화두를 던졌다. 국가인권위원회에 ‘프로 농구팀의 감독 선정시 고용차별’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며 스포츠계의 성차별을 지적한 것이다. 박찬숙에게 농구는 과연 무엇일까? ‘영원한 농구인, 박찬숙’의 얘기를 들어본다. ■ 국가 대표 최연소 선수였던 그녀가 받은 첫 번째 상은? “주전자나 들고 다니던 나에게 미스 월드 바스켓상이라니" 국민 총 생산량(GNP)이 590달러를 조금 넘던 1975년. 최연소 국가대표 선수로서 그녀의 최초 국제대회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세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美의 여왕을 뽑는 ‘미스 월드 바스켓’에 박찬숙이 선정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대표로 선발된 기쁨도 잠시였다. 태릉 선수촌 입촌과 더불어 혹독한 훈련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내선수로 시작한 박찬숙의 태릉 선수촌 이야기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 LA 올림픽 여자 농구 은메달의 순간, 코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얘들아, 나 좀 꼬집어봐. 이게 현실일까?” '84 LA 올림픽 한국여자농구단은 국내 구기 종목 사상 최초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1주일이라는 짧은 합숙 훈련만을 거친 채 참가한 대회에서 그들은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하게 된다. 캐나다, 유고, 호주 등 세계의 여자농구 강대국들을 이긴 것이다. 은메달을 확정 짓는 중공과의 경기 종료 2분 전, 그들에게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박찬숙이 ‘자기 생애 최고의 경기’라 주저 없이 말하는 LA 올림픽의 감동과 환희를 다시 한 번 들어보자. ■ 태평양 바다에서 헤엄치고 싶어요! “1억이란 돈을 누가 정말 들고 왔어요... 그 때 1억이 지금 10억 될 거예요.” 한국 여자 농구 사상 가장 화려했던 그녀의 실업 선수 시절 이면에는 감춰진 뒷이야기들도 많았다. 박찬숙을 영입하기 위한 실업팀들의 드래프트 작전, 과자와 음료를 안주삼아 벌였던 태평양 화학의 5연패 축하 파티 현장, 특히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1억 원의 현금 뭉치 사건’에 대한 진실도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들어보았다. ■ 체육대통령과 스타선수의 화려한 만남 “전두환 前대통령께서 관심이 참 많으셨어요. 전화도 자주 걸어 주시고 청와대도 자주 갔죠!” 80년대, 5공화국을 스포츠 공화국이라 말하던 시절에도 박찬숙은 명실공히 최고의 스타였다. 국제 대회에서 승리한 날은 경기가 끝난 직후 걸려온 대통령의 축전을 받기 일쑤였고 만찬에 초대 받아 청와대를 제집처럼 드나들기도 했다. 매스컴은 이를 놓칠 새라 스포츠를 사랑하는 대통령과 스타 선수와의 만남을 앞다퉈 보도했다. 고위 관리층의 관심은 승리 직후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박찬숙은 큰 국제경기를 앞두고서는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라”는 ‘아주 특별한 지시’를 받았다며 조심스럽게 당시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가족, 농구, 인생... 진정한 그녀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농구공이요? 저는 지구라고 해요... 그리고 그건 내 마음 같아요.” 한국 농구계의 대들보, 국내 1호 주부 선수 등 박찬숙에게는 이런저런 수식어가 많다. 복귀 후 가진 4년간의 대만 활동 시절에는 ‘한국의 국보’로 불리며 수많은 진기록을 세웠다. 그녀의 역할은 비단 선수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20년의 현역 생활을 끝내고서는 후배 농구인을 양성하는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동아시아 대회에선 한국농구사상 최초의 여자 국가대표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인생에서 화려한 선수 시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딸, 아내, 엄마라는 평범한 타이틀도 그녀의 수식어 중 하나다. 남들과 같다면 같고 다르다면 다른 인생을 살아온 그녀의 인생관은 무엇일까? 8시간 넘는 긴 인터뷰를 끝내며 박찬숙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부탁했다. “10년 뒤에 다시 봐요!”가 그녀의 대답이었다. 50살이 넘은 나이에도 농구 얘기가 가장 즐겁다는 ‘영원한 농구선수 박찬숙’을 <시대의 초상>에서 만나 보자.
이전글
EBS-FM 광복절 특집 4부작 - <유성기에 닮긴 삶>
다음글
제4회 EBS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 마스터클래스 수강생 모집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