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변화를 선도하는 EBS
프로그램의 최신소식에서 교육 채널 소식까지 EBS의 보도자료를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게시판 보기 페이지입니다.
제목    [보도자료] EBS 한국기행 - 수탈과 저항의 흔적들, 근대 유산의 도시 군산을 가다  
작성일 2011-11-10 조회수 11727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보도자료] EBS 한국기행 - 수탈과 저항의 흔적들, 근대 유산의 도시 군산을 가다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 금강호(錦江湖)

군산(群山)

 

방송 : 20111114() ~ 1117() 930

문의 : 조혜경 PD(010-2557-6426)

 

군산은 한곳에 모여 있는 많은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강과 바다, 평야로 이루어진 곳이다.

풍부한 어장과 기름진 평야라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군산은 호남곡창 지대의 쌀을 일본으로 옮기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지금도 수탈과 저항의 기록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따라 근대유산의 도시, 군산을 찾아간다.

 

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국내 최대의 평야로 한 때 전 국민이 먹는 쌀의 대부분을 생산했던 호남평야.

그 중심에 군산이 있다.

섬나라 일본에서 쌀은 매우 중요한 산업으로, 군산은 그야말로 군침 나는 곳이었다.

1899년 군산항이 개항되자마자 일본은 도시망 가로체계에 따라 군산을 격자형 도시로 발전시켜 농경지를 늘리고, 막대한 양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새로 생겨난 전주-군산간 도로는 주변 평야지대로부터 쌀을 끌어 모으기 위함이었다.

1934년 전라도 지역에서 생산된 300만석 이상의 쌀이 군산을 통해 일본으로 송출된 것을 통해 쌀의 도시 군산의 면모와 무자비했던 일본의 수탈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의 흔적은 도심 곳곳에 남아있는 건물들로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건물로 발산초등학교 내에 남아있는 시마타니 금고히로쓰 가옥’, ‘이영춘 가옥이 있다.

농장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시마타니 야소야가 불법으로 수집한 문화재들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전 보관하는 용도로 쓰였던 시마타니 금고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의 형태를 한 히로쓰 가옥.

아픈 역사의 흔적이 지금은 각종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의 명소가 되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보존이 잘 된 또 하나의 일본식 가옥, ‘이영춘 가옥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 최대의 농장주였던 일본인 구마모토의 별장으로 사용되던 이곳은 해방 후, 평생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 온 쌍천 이영춘 박사의 진료소로 사용되었다.

 

이영춘 박사는 구마모토가 자기 농장의 소작농들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초빙하였는데 주변 조선 사람들에게 무료 진료, 춘궁기에 먹을 것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초등학교 급식 실시, 초등학교에 양호교사를 두는 등 조선인들을 위해 힘썼다.

이런 노력으로 그 당시 개정의 조선인들은 일본 본토 사람들보다 건강상태가 좋았다고 한다.

 

빼앗긴 들에 찾아온 봄,

봄의 첫 새싹을 틔운 이영춘 박사의 이야기를 찾아간다.

 

2. 에두르고 휘돌아, 탁류길

 

금강(錦江).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 채만식, 탁류(濁流)에서

 

총 길이 401km의 금강이 서해 바다와 만날 준비를 하는 곳, 군산이다.

전라북도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남서부를 휘감아 돌던 청류(淸流)는 서천으로 들어오면서 조수간만의 차로 갯벌이 흩어지면서 탁류(濁流)로 변한다.

 

하여 금강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채만식의 탁류(濁流).

채만식은 군산의 탁류를 배경으로 식민지 시대, 혼탁한 사회 흐름에 휩쓸려 무너지는 한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사회의 어두운 세태를 리얼하게 형상화했다.

 

금강변에 위치한 채만식 문학관은 채만식의 문학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1년 건립되었다.

정박한 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곳에서 채만식 선생의 삶의 여정과 작품을 만나본다.

 

1990년대 생겨난 금강 하구둑으로 인해 물길이 막힌 금강과 함께 멈춰선 배가 있다.

1930년부터 전북 군산시와 충남 서천군 장항읍 사이, 금강하구 뱃길을 잇던 정기 여객선 금강호.

하구둑이 생기고 뱃길 대신 도로와 철길이 놓이면서 적자를 면치 못해 20091031일부로 운행을 멈췄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금강호.

40년간 금강호를 운행해 온 장명수 선장의 추억 속에서 만나본다.

 

겨울이 찾아왔음을 제일 먼저 알 수 있는 곳, 금강호(錦江湖).

금강 하구둑에서 십자들녘으로 이어지는 금강호는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다.

갯벌과 갈대밭, 십자들녘 인근 농경지가 철새들의 먹이창고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가창오리의 화려한 군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며 기러기류, 오리류 등 50여종 80만 마리의 겨울철새들을 한 자리에 볼 수 있는 곳.

겨울철새들의 낙원, 금강호를 찾아간다.

 

3. 해망동 망향가

 

해망동은 군산 내항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비탈에 자리한 동네로 근대화 시기 군산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매일 아침 군산항으로 들어오는 어선들과 어판장의 경매 소리로 시끌벅적한 곳.

이곳에 195114후퇴 때, 사람들을 태운 배가 도착 했었다.

소룡동 서부선착장 주변에 터를 잡은 해망동 999번지 수용소는 한국전쟁 때 북녘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모여든 실향민촌으로 목포, 속초, 부산과 함께 실향민 4대 도시였던 군산 해망동의 현실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에 오랜 세월 터를 잡고 살아온 노부부가 있다.

1세대 실향민이자 고향이 그리워 공업사 이름을 황해디젤이라 지었다는 오영두 할아버지와 공원자 할머니.

이제는 고향보다 더 익숙한 곳이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던 시절 부부를 품어주던 것은 바다였다.

그 시절 해망동 여인들 모두가 그러했듯이 할머니도 매일 새벽, 바다에서 채취한 굴을 손질해 도깨비 시장으로 갔다.

도깨비 시장은 새벽 5시부터 8시까지 도깨비처럼 반짝 열렸다 사라진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곳에 새벽시장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약 40년 전.

고향을 두고 떠나온 피난민들이 굴을 채취해 팔던 생계의 현장이자 물건 볼 줄 안다는 사람들이 부지런을 떨며 찾던 곳이다.

군산 화물역이 사라지며 예전만 못하다지만 아직도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고단한 세월을 겪으며 부지런함이 몸에 밴 할머니가 아직도 새벽 장터 한편에서 삶을 이어가는 곳.

도깨비 시장에서 할머니의 애달픈 망향가를 들어본다.

 

4.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70년대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고교야구대회.

그 중심에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가 있다.

 

1968년 창단한 군산상고 야구부는 전국대회 상위 입상의 전통과 실력을 두루 갖춘 자타가 인정하는 야구 명문이다.

특히 1972년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부산고등학교에 1:4로 패하고 있던 경기를 9회 말 짜릿한 역전극을 펼쳐 5:4로 우승하면서 역전의 명수라는 애칭을 얻었다.

 

40년 만에 모교를 찾아온 군산상고 부동의 4번 타자 김봉연 선수와 함께 또 다른 역전을 꿈꾸는 군산상고 야구부.

군산상고 학생들의 설렘 가득한 만남의 장소, 66년 전통의 이성당 빵집.

야구부 단골 체력훈련장 월명공원을 찾아 그가 추억하는 화려한 야구시절을 만나본다. .

이전글
[보도자료] EBS 스페이스 공감 - 문샤이너 푸른밤의 BEAT
다음글
[보도자료] 일본 화과자의 명인 - 니시오 사토시(EBS 직업의 세계 일인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