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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EBS스페이스-최이철'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  
작성일 2006-03-07 조회수 21795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 한동안 뜸 했었지” 7년만에 공개 무대에 서는 기타리스트 최이철
『EBS 스페이스』‘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 6’ 최이철
공연 일시 : 3월 9일, 10일 저녁 7시 30분
문의 : 백경석 PD(526-2004)
○ ‘한동안 뜸 했었지. 웬일일까 궁금했었지~’ 대한민국의 30, 40대라면 누구나 한번쯤 흥얼거려봤던 ‘한동안 뜸 했었지’의 주인공, 그룹 ‘사랑과 평화’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였던 최이철이 7년만에 공개 무대에 선다. EBS 스페이스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 시리즈의 여섯 번째 아티스트로 오는 9일과 10일, 공연을 가질 예정. 최이철이란 이름을 걸고 서는 최초의 무대인 EBS 스페이스에서 ‘사랑과 평화’ 시절의 히트곡 뿐만 아니라 ‘최이철의 요즘 음악’인 펑키 록도 팬들에게 선보일 생각이다. ○ 최이철과 별개로 생각 할 수 없는 두 가지. 바로 ‘펑키 록 기타’와 ‘사랑과 평화’이다. 1969년 미8군에서 기타 연주를 시작한 최이철은 무수한 레코딩 세션을 해왔고,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김현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나 송창식의 ‘담배 가게 아가씨’에서 흘러나오는 펑키한 기타 연주가 그의 것이다. 그는 1977년 ‘사랑과 평화’를 결성해 발표한 ‘한 동안 뜸했었지’를 크게 히트시키며 가요계에 펑키, 디스코 장르를 도입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어 발표한 2집「장미」역시 베토벤의 '운명', '여왕벌의 행진' 등의 클래식을 크로스오버 연주곡으로 수록하여 또 한번 화제가 되었다. 이후 1980년 재결성한 ‘사랑과 평화’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전통 타악기와 록을 접목한 이른바 ‘한국적 록’을 보급하는데 앞장섰고, 1988년 이남이가 부른 `울고 싶어라`가 대대적인 히트를 기록한다. 이렇게 1970년대부터 선구적인 록 사운드를 이끌어 온 ‘사랑과 평화’는 1980년대 한국 록의 중흥과 헤비 메틀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이철은 현재, '유라시아의 아침'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사운드에 동양 음악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해오면서, “명상적이고 편안한 음악, 조상들의 뿌리를 찾는 의미 있는 창작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의욕을 밝히고 있다. 이번 공연은 그의 현재진행형인 ‘유라시아의 아침’ 프로젝트의 음악과 ‘사랑과 평화’의 음악인생 발자취, 그 탐구 열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연륜 있는 아티스트의 음악 세계를 조망하고자 시작된 기획 시리즈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 포크의 거장 한대수와 들국화 출신의 로커 주찬권, 포크와 블루스의 명인 이정선, 작은 거인 김수철, 영원한 개구쟁이 김창완이 이 무대를 거쳐 갔다. << 붙임, 공연을 앞둔 최이철과의 인터뷰 >> 음악을 사랑하는 Old Boy, 최이철 “음악은 생활이에요. 내 삶이고, 무언의 대화이지요.” 우문이었다. 열여섯의 나이에 기타를 매고 미8군 무대에 섰던 그가 아니던가. 오는 3월, 최이철은 EBS 스페이스를 통해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Q. 오랜 만에 대중들 앞에 선다. 소감이 어떤가. 내 이름을 걸고 하는 공연은 EBS 스페이스 무대가 처음이다. 물론 지금 음악활동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서지만. 무척 떨린다. 다양한 연주를 들려달라는 스페이스측의 제안이 참 반가웠다. 과거에 히트한 곡들만 불러달라고 했으면 공연에 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최근 내 음악에 관심을 가져준 게 고마웠다. 다른 어떤 공연보다 진지한 자세로 임할 생각이다. Q. 어떤 공연을 보여줄 생각인가. 공연은 크게 3부로 나뉜다. ‘사랑과 평화’ 시절에 발표한 히트곡들 ‘한동안 뜸했었지’, ‘장미’ 등을 부르는 1부, 퓨전재즈곡들을 연주하는 2부 그리고 최근 작업 중인 연주곡(<유라시아의 아침>이란 이름으로 발매를 준비 중이다)을 들려줄 예정이다. 2부까지는 관객들도 신이 나서 들을 텐데, 월드뮤직인 <유라시아의 아침>에 수록된 곡들은 지루한 면도 있어 걱정이다. 관객들이 끝까지 잘 들어주었으면 좋겠는데…. Q. 언제부터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나. 4, 5살 때부터였다. 아버지와 삼촌이 모두 재즈연주가였다. 두 분 다 트럼펫을 연주하셨는데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잠 들 때까지 음악을 들으며 생활했다. 어려서 ‘너 커서 뭐가 될래?’라고 어른들이 물으면 당연히 음악을 하겠다고 답했다. 아버지가 음악 활동하는 모습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Q. 기타리스트가 된 특별한 사연이 있나. 어릴 때는 특별한 악기를 구하는 게 힘들었다. 기타는 무척 흔한 악기라서 제일 먼저 접한 게 기타다. 악기라면 뭐든지 다 좋아했다. 단지 가장 먼저 잡은 게 기타다. Q. 기타의 매력이 뭔가. 기타는 리듬과 멜로디 둘 다를 표현할 수 있는 악기다. 다른 악기들에 비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게 해준다. 기타는 여러 가지 톤과 미묘한 소리를 낼 수 있다. 요즘은 컴퓨터로 거의 대부분의 악기가 내는 소리를 만들 수 있는데 기타 음만큼은 못 만든다. Q. 그룹 ‘사랑과 평화’ 활동 이전의 음악생활.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건 18, 19살 때부터다. 음악적으로 잘 맞는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서 미8군 무대에서 공연했다. 재즈드러머 김대환, 조용필과 1971년에 ‘김트리오’를 결성해 명동에 있는 클럽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어릴 적 만난 사람들 중에 유명한 사람이 많다. 당시엔 어딜 가든 내가 늘 나이가 어려서 다들 형이라고 불러야 했다. 김트리오가 해체된 후에는 나중에 ‘사랑과 평화’에서도 함께 활동했던 김명곤을 만나 미8군 무대로 다시 돌아갔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미8군 무대에 서려면 오디션을 봐야했는데, 오디션 날짜를 3일 앞두고 오디션을 보겠다고 나서니 다들 말렸다. 30곡의 리스트를 내고 그 중 심사위원이 고르는 3곡을 연주해야 했는데, 심사위원이 우리가 연습하지 못한 곡을 두 곡이나 고르는 바람에 D등급을 받고 겨우 오디션을 통과했다. 그랬던 우리가 6개월 뒤에는 한국팀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오디션에서 더블A를 받았다. 미군 부대에서 활동한 덕분에 누구보다 먼저 미국음악을 접했다. 펑키 록을 그때 처음 들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음악만큼은 서로 안 뒤지려고 참 학구적으로 노력했던 거 같다. 학교에서 공부하지 않는 대신 나에게 필요한 음악이론을 전문적으로 배우려고 무작정 당시 이대 교수였던 이교숙 씨를 찾아가 화성학을 배우기도 했다. 세월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그냥 음악이 좋아서, 음악만 하며 살아왔다. Q. EBS 스페이스 무대를 통해 처음으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일 텐데, 대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주길 바라는가. 우리나라에도 월드음악 마니아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공감해주었으면 좋겠다. 음반이 발매되면 CD도 사서 들어주고. 새 음반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저 내가 다음 음반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게 현재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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