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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큐프라임' 한중일 궁중생활사 - 궁녀, 환관, 왕비  
작성일 2008-05-30 조회수 15750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한․중․일 궁중생활사 - 궁녀, 환관, 왕비 EBS‘다큐프라임’
궁궐의 역사와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통사적 접근 명소 로케이션 촬영 통해 역사적 정보 흥미롭게 전달 배우 오만석 내레이션 궁녀와 환관은 정치도사? 일본의 에도막부 여관은 억대 연봉의 전문직 여성 화려하지만 외로운 삶을 살았던 왕비
방송 : 6월 2일(월) ~ 4일(수) 밤 11시 10분 ~ 12시
담당 : 기획다큐팀 한송희 PD (011-9774-5495)
우리나라는 <삼기사기>, <고려사>를 이어 <조선왕조실록> 까지 세계적인 역사적 기록들이 풍부하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와 방대한 역사적 기록 속에서도 왕조의 손과 발이 되었던 환관과 궁녀의 기록만큼은 찾아보기 힘들다. 왕비의 기록 역시 잠시 언급될 뿐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대국으로 인정받던 중국, 이웃나라 일본까지 왕실의 삶을 지탱해왔던 그들의 행적에 관한 자료를 남기지 않았다. 왕실 문화의 한 축이 되었던 그들은 왜 긴 시간동안 침묵을 강요받았을까? EBS 다큐프라임 '한․중․일 궁중생활사-궁녀, 환관, 왕비'는 조선(1392-1910), 중국의 명(1368-1644), 청(1636-1912) 그리고 일본 에도막부(1603-1867) 시대를 중심으로 한 인물에 대한 1인칭 조명이 아닌 다양한 통사적인 시각으로 접근을 했다. 각 시대를 살아간 한․중․일 궁녀, 환관, 왕비들의 삶을 상호 비교해 보고 한․중․일 주요 역사명소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서 기존의 역사프로그램의 어렵고 식상한 틀에서 벗어나 시청자들에게 역사 정보를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했다. '궁녀' '환관' '왕비' 3편으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궁녀편 > 6월 2일 방송 철없던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궁에 들어왔던 궁녀들, 그녀들은 언제 어떤 계기로 궁에 들어와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업무를 했는지? 근무조건은 어떠했는지? 그녀들에게도 성과 사랑이 있었는지? 승은을 입으면 어떻게 되었는지? 정치판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한중일 삼국의 여관들의 삶을 비교분석하며 쉽고 재밌는 역사이야기를 전달한다. * 궁녀가 될 수 있는 자격은 한중일 각각 달랐다. 궁녀는 왕의 여자다. 그래서 한번 궁에 발을 들여놓으면 죽기 전에는 궁을 나갈 수도 없었고, 결혼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왕과 왕의 가족들을 위해서만 살아야 했다. 여자이지만 여자로 살수 없었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런 삶을 살아야 했을까? 궁녀가 될 수 있는 자격조건은 세 나라가 각기 달랐다. 조선은 공노비의 딸, 명나라, 청나라는 일반백성의 딸, 그리고 일본은 무사나 관리의 딸들이 왕의 위해 몸을 바쳤다. * 일본 에도 막부 여관은 억대의 연봉을 받은 전문직 여성이다. 궁궐안의 가사노동을 담당한 궁녀. 그들은 음식, 바느질, 청소 등 체계적이고 분업화된 일을 맡아 전문성을 키웠다. 그들은 왕의 여자가 아닌 근대 전문직 여성으로 자리매김했다. 조선의 제조상궁은 정1품 벼슬을 받고 사대부 관료보다 많은 월급을 받았으며 특히 일본 에도 막부 여관은 억대의 연봉을 받은 고소득자였다. * 궁녀, 그들은 동성애를 즐겼다. 한중일 삼국의 궁녀는 궁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성을 포기해야 했으며 금지된 성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성욕의 인간의 본능적 욕구다. 이런 욕구를 궁녀들은 어떻게 풀었을까 ? 바로 같은 처지의 궁녀들과 동성애를 즐긴 것이다. 역사기록은 궁녀들의 성생활을 끝끝내 숨기려고 했지만 기록이나 증언을 통해 그들의 동성애에 관한 자료들은 속속히 드러났다. * 한중일 궁녀들은 정치도사다. 궁녀는 자신이 모시는 상전의 운명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달라진다. 그래서 자신이 모시는 상전이 권력이 가지고 있으면 자신도 힘이 생긴다. 그렇기에 수 십 년간 궁궐에서 생활한 궁녀들은 정치소용돌이에서 살아남는 법을 몸으로 터득해야 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정치도사가 되어야 한다. < 환관편 > 6월 3일 방송 환관. 비인간적인 제도의 희생물이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자신의 성을 포기하고 나라를 위해, 왕을 위해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들은 왜 자신의 성을 포기하면서도 환관이 되었을까? 조선과, 명․청나라 환관의 삶을 비교해보면서 그들이 왜 어떤 이유로 어떻게 해서 환관이 되었는지 ? 환관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했던 것은 무엇인지? 남자구실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고 대를 이었는지?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본다. 왕조의 멸망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어쩌면 남자로서의 삶보다 훨씬 매력 있었을지도 모르는 환관의 삶을 들어가 본다. * 중국의 환관과 조선의 환관은 달랐다. 환관은 반드시 남자구실을 할 수 없는 자여야만 한다. 그렇다면 선천적인 고자가 그렇게 많았을까? 물론 대답은 아니다! 조선은 후천적인 사고를 당한 이들이 많았지만 중국은 환관이 되기 위해 자신의 고환과 성기를 스스로 잘랐다. 또, 명나라 청나라 환관은 고환과 성기를 모두 잘라야 했지만 조선 환관은 고환만 없고 성기는 남아있었다. * 일본 역사에는 환관이 없었다. 왕의 여자들을 지키는 환관은 전 세계에 걸쳐 존재했지만 일본 역사에서는 환관의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일본 천황가나 통치자인 쇼군은 어떻게 자신의 여자들을 지켰을까? 그 비밀은 일본 에도 성의 구조와 여관 조직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조선환관은 궁녀와 사랑을, 중국 환관은 후궁과 사랑을! 성기능을 상실했지만 그들의 성욕은 살아있었다. 궐내 연애를 엄격하게 금지시켜 놨지만 궁녀랑 몰래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물론 그 사랑이 오래 가지 못하고 발각되어 참형을 당하는 것이 태반이었지만 죽음을 무릎 쓴 사랑은 계속 되었다. 특히 중국 환관들은 후궁과의 은밀한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후궁과의 사랑은 권력을 잡는 지름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환관들에게 자식이 있다. 남자 구실을 할 수 없었지만 환관들에게는 대를 잇는 자식이 있었다. 바로 양자제도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양자를 입양해 대를 잇고 그 자식은 또 환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중국 환관과 달리 조선환관은 결혼까지 가능했다. 결혼이 허용되었던 조선 환관의 부부생활, 그 비법을 찾아본다. * 권력을 손에 쥐는 것, 이것이 환관의 매력이다. 왕의 수족이였던 환관, 그의 말 한마디는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다. 궐이나 정치판의 모든 정보는 환관을 통해서 듣기 때문에 환관은 왕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하며, 궐내 가장 빠른 소식통이여야 한다. 그래서 그의 말 한마디는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위력 때문에 온갖 유혹의 손길이 뻗치며 부가 자연스럽게 따르게 되는 것, 이것이 환관의 매력이며 스스로 자신의 성기를 잘라 환관이 되려고 했던 이유가 아닐까 ? < 왕비편 > 6월 4일 방송 동아시아 세 개의 나라, 한국과 중국 일본은 전제군주시대 조선과 명, 청, 그리고 에도 막부라 불렸다. 14세기부터 근대화 전 17세기 말, 군왕이 통치했던 당시 세 개의 나라에 존재했던 왕비. 간택이라는 검증을 통해 궁으로 들어간 그녀들은 화려하고도 외로운 삶을 살았다. 그녀들은 무슨 일을 했을까? 권력이 있었을까? 그녀들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동아시아 세 개 나라의 왕비는 서로 무엇이 다른 가? 최고의 여성자리에 오른 그녀들을 비교, 분석해본다. * 금혼령이 내려지다. 15세기 조선의 어느 봄날. 이제 열 살이 된 어린 소녀가 해맑은 얼굴로 뜰에서 놀고 있다. 그리고 같은 시각. 한양 거리에는 방이 하나 붙는다. 그리고 소녀는 궁궐로 입궁하게 된다. * 체계적이고 세밀했던 간택 왕비는 아무나 될 수 없었다. 사대부 처자들은 관직에 따라 입궐해 왕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련한 상궁에 의해 외모부터 밥 먹는 습관까지 세밀하게 관찰 당했다. 이런 간택 과정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세 번까지 이루어졌고 합격한 최후의 1인은 이제 완전히 다른 운명으로 태어난다. 당시 명나라 황후 간택과정은 조선보다 더 체계적이고 웅장했다. 우선 1차로 모인 소녀들만 5천명이 되었고 무려 8단계를 거쳤다. 조선과 간택 시 보는 기준은 비슷하지만 명은 더욱 꼼꼼했다. 후보자들의 손과 발 크기까지 길이를 재었다고 한다. 또한 최후에 3인을 뽑아 황후가 간택되면 나머지 두 명은 비빈으로 올렸다. 전제군주가 아닌 막부의 장군이 통치한 에도막부. 당시 천황은 제사를 주관하는 정도의 상징적인 존재였고 실제 다른 나라 같은 왕비의 권한은 쇼군(장군)의 정실부인에게 있었다. 쇼군의 정실부인은 문신 귀족가문에서만 뽑았고 조선과 명나라처럼 공개적인 간택은 없었다. 이는 오오쿠라는 막부의 성내 여인들이 함께 모여 살던 은밀한 공간과도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 간택을 통해 궁궐(성) 안으로 들어간 각각의 나라 여성들은 최고의 여성으로 올라가기 까지 화려한 순간과 순탄하지 못한 순간까지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 그녀들은 화려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이는 역사적인 사실로도 알 수 있는데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남편(세자)이 왕으로 즉위해 자신이 낳은 아들(적통)이 왕이 되고 자신은 대비로 되어 죽은 왕비는 헌종비 명성왕후 단 한 명뿐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풍전등화보다 더 위태로웠던 조선의 왕비를 비롯해 간택부터 결혼, 생활 처소, 장신구, 출산, 고부갈등, 후궁관계, 수렴청정(섭정, 정치참여), 각 나라 마지막 왕조와 왕비(황후)까지 재미있고 다채롭게 엮어 놓은 최초의 삼국 궁중생활 비교사이다. < 내레이션을 맡은 오만석 > 통사적 시각의 다큐멘터리를 전체의 흐름을 깨트리지 않고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한 배우 오만석. 재연 형식의 역사다큐멘터리에 어울리도록 그는 절제된 목소리의 감정이입으로 그들의 일생에 대한 목소리를 대신하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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