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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큐 10' 60년대엔 어떤 일이 일어났나?  
작성일 2008-02-21 조회수 13012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오스왈드는 왜 캐네디를 쏘았나? EBS ‘다큐10’ 60년대엔 어떤 일이 일어났나?
전후세대에 정신적으로 큰 영향 미친 60년대 역사적 사건들의 의미 조명
방송 : 2월 25일(월)~ 2월 28일(목) 밤 9시 50분 ~ 10시 40분
기 획 : 글로벌팀 이유자 PD (526-2568) 녹음연출 : 글로벌팀 이용준 PD (526-2573)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대행진, 존 F. 케네디 암살, 베트남 전쟁과 전 세계의 베트남 반전 운동, 중국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체 게바라 암살, 소련의 체코 침공사건, 파리 소르본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유럽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사회주의 혁명 시위 등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 시기가 1960년대의 일이다. EBS 『다큐10』에서는 이중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히피 축제를 개최하면서 반전과 인종차별반대 운동에 앞장선 미국 젊은이들의 이야기와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며 풀리지 않는 미궁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존 F. 케네디 암살사건, 그리고 피의 10년으로 불리며 중국 인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문화대혁명 사건을 당시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인터뷰와 관련 자료를 통해 그 의미를 조명해 본다. 2. 25 (월) 꽃을 든 젊은이들의 저항 - 히피 (Summer of Love) 제작 : A Franco Dolgin Productions, 2007 / 방송 : PBS, 2007 1967년 여름, 샌프란시스코를 강타한 히피들의 축제 ‘사랑의 여름’은 미국 전역의 십대 중 절반이 몰려왔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경제공황과 2차 대전의 터널을 벗어나 풍요를 맛보던 미국에 또 다시 암운을 드리운 베트남전과 케네디 대통령 암살은 풍족하고 예민한 전후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반문화운동, 즉 히피운동을 낳았다. 기성세대의 가치를 부인하고 반전과 평화, 사랑을 외치며 자연과의 교감과 영혼의 탐구와 같은 유토피아적 가치를 중시한 10대는 코뮌(Commune) 같은 집단공동체를 건설한다. 반전시위 도중 총구에 꽃을 꽂기도 했던 이 Flower Movement 세대는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애시버리로 몰려와 거리를 점령하고 공원에서 무료급식을 하며 돈을 불태우고 유명한 록 스타, 대학교수, 시인 등이 공연을 하는 등,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각종 퍼포먼스를 벌인다. 하지만 지나치게 문란한 성행위는 물론 LSD와 같은 환각제가 정당하고 진보적이라고 주장하고, <샌프란시스코 오라클>이란 히피신문과 대중매체를 통해 자극을 받은 가출청소년 때문에 헤이트 애시버리 거리가 서커스 장으로 전락하자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다. 히피들의 정신적 지주인 하버드대 교수 티모시 리어리와 유명 인사들의 지지는 괴짜들의 별난 문화가 아닌,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된다. 전 세계의 문화적 소용돌이가 한창이던 1960년대에 반전과 인종차별반대 운동에 앞장선 미국 최초의 무대, '헤이트애시버리'. 그곳에서 벌어진 한여름의 히피혁명을 당시 화면과 40년 뒤 당시를 회상하는 참가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 조명한다. 2. 26 (화) 오스왈드는 왜 케네디를 쏘았나 (Oswald's Ghost) 제작 : Robert Stone Productions, 2007 / 방송 : PBS, 2007 1963년 11월, 미국 전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유력한 용의자 리 하비 오스왈드가 사건 발생 며칠 후 잭 루비에 의해 저격, 살해되면서 사건은 미궁 속에 빠지게 되었고, 그 후로 숱한 의혹과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미국인의 70%는 지금도 음모론을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케네디 암살의 진실은 무엇일까? 로버트 스톤 감독의 다큐멘터리 는 노먼 메일러, 에드워드 J. 엡스틴, 톰 헤이든, 게리 하트, 댄 래더와 같은 저명한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 당시의 정황과 케네디 암살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 등을 추적한다. 존 F. 케네디는 1963년 11월, 댈러스에서 시가행진을 하던 중 두 발의 총탄을 맞고 즉사했다. 댈러스는 케네디를 싫어하는 극우 세력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소위 좌익이라는 오스왈드가 우익의 중심지에서 대통령을 살해했다고 하더니, 체포 후 며칠 만에 오스왈드마저 잭 루비에 의해 암살당하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의심스러운 정황 때문에 수많은 루머와 음모론이 떠돌았다. 64년 대선을 의식한 차기 대통령 린든 존슨은 루머를 잠재우기 위해 워렌 위원회(암살 진상 조사 위원회)를 조직하여 케네디 암살 사건을 조사한다. 결정적인 증거는 케네디가 저격당한 순간을 완벽하게 포착한 아브라함 재프루더의 필름. 이 필름으로 총탄이 날아온 방향과 총탄의 개수에 대한 강한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워렌 위원회는 한 발의 총탄이 케네디와 코널리 주지사를 모두 맞혔다는 소위 ‘마법의 탄환 이론’을 내세워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라는 결론으로 조사를 매듭짓는다. 하지만 CIA 내부에 카스트로 암살 계획이 있었던 사실을 알고 있던 존슨 대통령은 카스트로가 보복을 하기 위해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하여, 공산 세력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베트남과의 전면전을 선포한다.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관한 소식을 거짓말로 일관하자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깊어졌고, 케네디 암살에 관한 정부의 조사 결과마저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진다. 2. 27 (수) 오스왈드의 망령 (Oswald's Ghost) 제작 : Robert Stone Productions 2007 / 방송 : PBS, 2007 개리슨 검사로 인해 케네디 암살 사건의 의혹 수사가 또 다른 전환점을 맞는다. 암살의 배후가 CIA라는 정치적 음모론이 제기된 것이다. 게다가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과 대선을 앞두고 있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정치적 음모론은 더욱 거세진다. 상원 특별위원회는 미국 정보기관을 조사한 결과, 실제로 CIA가 최소한 6명의 외국 지도자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으며, 암살 계획에 마피아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존 F. 케네디와 불륜 관계를 맺고 있던 한 여배우가 마피아 두목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CIA 연루설이 더욱 유력시되었다. 하지만 오스왈드와 안면이 있거나 그에 관한 조사를 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스왈드는 언론에 비춰진 모습과는 달리 똑똑했으며, 그런 일을 저지를만한 동기와 배짱이 충분한 인물이었다고... 또한, 오스왈드가 누명을 썼거나 사주를 받아 케네디를 죽였다는 믿을만한 증거는 하나도 없다고 말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오스왈드는 희생양이었을까? 아니면 음모론을 선호하는 미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2. 28 (목) 필름에 기록한 10년의 진실 - 문화대혁명 (Cultural Revolution Redux) 제작 : NHK, 2006 중국 현대사에 ‘재앙의 10년’, ‘피의 숙청’으로 기록되며 1960년대 중반 중국 전역을 휩쓴 문화대혁명(1966-1976)은 아직도 중국에서는 제대로 다루는 언론이 없을 만큼 금기시되고 있다. 마오쩌둥 주석의 주도로 봉건적 잔재를 철폐하고 주자파(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세력)를 타도한다는 미명 하에 실시된 이 운동은 그러나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한 권력투쟁에 수많은 젊은이를 동원하고, 문화유산을 파괴하며, 억울한 희생자를 양산하는 등 중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며 중국 역사를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기록은 현재 30만여 장의 사진으로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방대한 기록을 보유한 사람은 전직 인민일보 사진기자로 홍위병을 지도하기도 했던 ‘리 전성’이다. 리 전성은 문화대혁명의 현장을 10만장의 사진으로 기록했고 공안당국의 눈을 피해 보관하던 필름을 2003년 미국에서 출판한다. 문화대혁명에 회의를 느끼고 분파투쟁에서 밀려나 강제수용소 생활을 하는 등 리 전성에게도 문화대혁명은 아픈 과거로,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로 남아있다. 그들이 그토록 열정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문화대혁명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그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리 전성은 결국 2006년 자신이 찍은 사진을 들고 중국으로 건너가 한 달 동안 사진 속의 인물들을 찾아다닌다. 지러스(극락사) 파괴 당시 홍위병을 안내했던 젊은 스님과 헤이룽장 성의 고관으로 홍위병 집회 때 마오 주석과 헤어스타일이 같다는 이유로 강제 삭발을 당한 ‘리 판우’ 시장의 딸 ‘리 릴리’, 홍위병의 톈안먼 광장 집결 당시 마오 주석의 등장에 열광하던 혁명위원회 회원 ‘시 소윈’, 마오의 사상을 열렬히 전파해 농민들로부터 170여 개의 마오 배지를 받은 인민해방군의 영웅 ‘왕 궈샹’, 리 판우를 삭발한 홍위병의 행방을 추적하다가 만난 하얼빈 공업대학 동문들과 과거 신문사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 이들을 만나 40년이 지난 지금, 한때 마오쩌둥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열정을 바친 문화대혁명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추적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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