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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B>EBS-TV 시사다큐 <두 가지 인생 - 빌 클린턴 인터뷰></B>  
작성일 2004-07-13 조회수 14083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BBC기자 딤블비와 클린턴의 흥미진진한 인터뷰''
EBS 시사다큐멘터리 <두 가지 인생 - 빌 클린턴 인터뷰>

방송 : 7월 14일(수) 밤 8시 50분 ~ 9시 40분
담당 : 권혁미PD (영상미디어센터 / 526-2574 / 019-351-1539)


EBS는 최근 자서전을 출간해 화제가 되고 있는 미국 前 대통령 빌 클린턴의 인터뷰를 방송한다. (제작 : BBC “the Clinton Interview")
7월 14일(수)에 방송되는, 시사다큐멘터리 <두 가지 인생 - 빌 클린턴 인터뷰>는 지난 달 자서전 “My Life" 출간에 맞춰 BBC의 데이비드 딤블비 기자가 클린턴의 개인적인 삶과 공적인 삶 양면을 파고든 프로그램으로 두 사람 사이의 뜨거운 설전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그 동안의 스캔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들과 가족들과의 관계 등을 직접 토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또한 개인적인 스캔들뿐만 아니라 현재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대외 정책의 전망, 아내 힐러리의 정치적 성장에 대한 기대까지 읽을 수 있다.
집권당시 CEO형 리더십 대통령으로 평가된 반면, 끊임없는 섹스 스캔들로 숱한 화제를 뿌린 빌 클린턴. 미국인들에게 위대한 대통령이라기보다 “위대할 수도 있었던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빌 클린턴의 모든 것을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두 가지 인생(Parallel Lives) - 빌 클린턴 인터뷰≫ 루즈벨트 이후, 민주당 대통령으로는 52년 만에 재선에 성공한 빌 클린턴. 그는 8년간의 재임기간 중 경제를 회복시킨 것은 물론, 냉전 이후의 세계를 안정시키고 미국의 21세기를 착실히 준비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의 재임기간은 스캔들로 얼룩졌다. 아칸소 주지사 재임 당시에 투자했던 부동산 회사 ‘화이트워터’에 대한 의혹으로 시작된 스캔들은 온갖 게이트로 이어진다.
공화당이 지배하던 미국 의회는 클린턴에 대한 정치공세를 늦추지 않았고, 이는 화이트워터 의혹 조사를 위한 특별검사 임명으로 이어진다. 공화당의 입김으로 특검에 임명된 케네스 스타는 결국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을 밝혀내고 클린턴은 정치 인생 최대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BBC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딤블비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클린턴을 난처하게 만든다. 특히 르윈스키와의 추문에 대한 질문은 추궁 같은 느낌마저 주는데, 클린턴은 이 부분에서 화를 내며 딤블비와 언론 전체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외에도 불우했던 어린 시절, 성추문 공개 후 겪었던 일화들, 이라크전과 대 테러전에 대한 자신의 견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평화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르완다 학살에 보다 일찍 개입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 등도 언급된다.
마지막으로 힐러리 클린턴의 대통령 출마설에 대한 질문을 받은 클린턴은 힐러리의 공직수행 능력을 칭찬하며, 그런 기회가 온다면 자신은 조용히 내조를 하겠다며 농담을 던진다.
▶ ≪빌 클린턴 일대기≫ 본명은 윌리엄 제퍼슨 블라이스 4세이며, 아칸소 주(州) 호프 출생이다. 유복자(클린턴의 친아버지 윌리엄 블라이스는 클린턴이 태어나기 3개월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로 태어나 결손가정에서 소년시절을 보내고, 15세 때 아칸소 주의 우수학생으로 뽑혀 백악관을 방문, 대통령 J. F.케네디와 악수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정치가가 될 결심을 하였다. 1968년 조지타운대학을 졸업, 이어 2년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로즈 장학생으로 유학하였으며, 그 후 예일대학교 법학대학원에 입학, 졸업과 동시에 아칸소대학 법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1972년과 1976년 대통령선거 때 민주당후보인 G.맥거번과 J.카터의 선거운동을 지휘하였다. 1976년 아칸소 주 법무장관이 되었으며 1978년 32세에 미국 최연소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민주당 우파에 소속되어 1992년 현직 대통령 G.H.W.부시를 누르고 제42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사상 세 번째로 젊은 대통령이 되었다. 전후(戰後)세대로서 최강의 군사력과 적극적인 경제정책으로 미국을 새롭게 탄생시킨다는 노선을 지향하면서 1993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996년 4월 한국의 제주도를 방문, 김영삼 前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1997년 12월, 백악관 여직원이던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사건이 공개되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 1998년 10월, 하원은 클린턴에 대한 탄핵조사안을 가결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탄핵안도 가결하였다. 그러나 1999년 탄핵소추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실용적인 경제 및 대외정책에 크게 힘입어 70%에 이르는 지지도를 얻었다.
▶ ≪인터뷰 인용문≫ - 딤블비 : 르윈스키 스캔들 당시 침대에서 쫓겨나 소파에서 잠을 잤다고 회고록에 나오던데? - 클린턴 : 네. 지금은 이렇게 웃지만 정말로 전 쫓겨났습니다.
- 딤블비 : 두려움도 느꼈습니까? - 클린턴 : 안심을 했죠. 소파로 쫓겨나긴 했지만 가족들이 한 집에 머물러 준다는 사실은 아내와 딸이 날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생각했어요. 마땅한 벌을 받고 있고 아내와 딸이 절 비난하고 화내는 건 당연하다고요. 같은 집에 사는 것 자체가 진전이었고 두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게 기뻤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맡은 일, 집중할 다른 일이 있어서 다행이었죠. 일이 없었으면 하루 종일 내가 얼마나 나쁜 녀석인지만 생각했을 테니까요.
- 딤블비 : 클린턴 정부와 현 부시 정부가 후세인, 이라크를 보는 눈은 완전히 다릅니다. 후세인 억제를 위해서는 봉쇄정책이 최선이라고 보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 클린턴 : 이라크 공격은 지지했을 겁니다. 만약 사찰단이 사찰을 마치고 이라크가 비협조적이라고 밝혔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무기사찰에 관한 UN 결의안에 따라 사찰이 끝날 때까진 기다렸어야죠. 저는 알카에다와 빈 라덴이 후세인보다 훨씬 위협적이라고 봤습니다.
- 클린턴 : 먼 미래의 정치적 상황은 예측할 수 없다는 걸 저희는 오랜 경험으로 압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케리를 지원하는 데 전력하고 있어요. 힐러리는 멋진 상원의원이고 기회만 온다면 훌륭하게 해낼 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 공직수행 능력이 가장 뛰어나죠. 저보다도 낫습니다. 대단한 사람이죠. 아내가 상원의원이 되어 기쁘고 계속 공직에 있기를 바랍니다. - 딤블비 : 그럼 “미국은 다시 하나 값으로 둘을 얻게” 되겠군요. - 클린턴 : 제가 대선 캠페인 때 썼던 슬로건인데 그땐 반응이 별로였죠. 이제 제가 차를 따를 차례입니다. (대통령 영부인의 수동적인 정치참여, 백악관에 온 손님들한테 차나 따라준다 - poring tea - 고 표현한다. 힐러리가 공직 전면에서 선출되면 자신은 영부인들의 역할인 차나 따라줄 거라는 의미심장한 농담이다.)
첨부파일 첨부파일시사다큐멘터리-클린턴인터뷰-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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