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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사다큐멘터리 ' 이미지 정치, 이렇게 탄생했다'  
작성일 2006-05-22 조회수 21062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케네디와 노무현 대통령의 공통점은? ‘이미지’가 정치인과 국가의 운명 바꾼 사례 소개
『시사다큐멘터리』특집 기획 ‘이미지 정치, 이렇게 탄생했다’
방송 : 제1편. ‘정치는 미디어다’ 5월 24일 밤 11시 ~ 11시 50분 제2편. ‘마케팅이 된 선거운동’ 5월 31일 밤 11시 ~ 11시 50분
연출 : 권혁미 PD (526-2574)
○ 지난 주말 발생한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을 두고 용의자의 범행 동기와 더불어 사건 이후 각 정당의 손익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러 가지 힘들이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 역시 5.31 지방선거에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EBS 『시사다큐멘터리』는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큰 변수, ‘후보자의 이미지’에 집중한다. 5. 31 지방선거를 앞두고 특별 기획된 ‘이미지 정치, 이렇게 탄생했다’ 2부작을 통해 이미지 정치와 미디어의 관계를 세계 여러 선거 사례들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이미지와 미디어 홍수 속에 가려진 정치인들의 실체를 파악해 본다. ○ 현대의 정치에서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대중을 이끌어 가려는 정치 컨설턴트나 정치 홍보 전문가들은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 왔으며 이들이 여론을 요리하는 실력은 이미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지난 우리나라의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 캠프의 “감성”을 자극하는 정치광고들은 대선승리에 크게 기여했으며 최근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들도 각종 수단을 통해 후보자를 브랜드화하는 이미지로 선거에서의 승리를 꿈꾸고 있다. ○ 프랑스 TELE IMAGES사에서 제작한 ‘Lords of Spin’을 원작으로 한 이번 2부작 ‘이미지 정치, 이렇게 탄생했다’를 통해 심리학의 발달과 그 궤를 같이하는 정치 홍보의 태동에서부터 TV라는 강력한 매체가 어떻게 정치인들과 국가의 운명을 바꿔 놓았는지, 여론조사가 어떻게 선거 운동에 쓰이고 있는지, 최근의 정치광고 동향과 인터넷이 최근 선거에 미친 영향에 이르기까지 현대 이미지 정치의 형성과정과 그 허와 실을 조망할 기회를 제공한다. < 5월 24일 방송 제1편 : 정치는 미디어다> 현재 세계 모든 나라에는 여론의 동향을 분석하고, 여론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노력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정치 컨설턴트’ ‘정치홍보 전문가’ 등의 이름으로 특히 선거철에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이들은 정치인들의 필수불가결한 동반자가 됐다. 정치홍보의 고향이자 최전선인 미국에서 정치홍보가 발전해온 과정을 통해, 소수의 인물들이 어떻게 여론을 요리해왔는지를 살펴보고,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가 맞이한 위기를 생각해보자. 본격적인 의미의 정치 홍보는 ‘에드워드 버네이스’에 의해 시작됐다.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1차대전에 참전한 미 정부의 의뢰를 받은 버네이스는 ‘전세계의 민주주의 수호’란 문구를 통해 여론을 반전시켰다. 버네이스는 언론이 정치에 미치는 중요성을 전적으로 파악하고, 정치 홍보를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인식시킨 인물이었다. TV시대가 열리자 정치홍보 시장은 더 성장했고,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감성을 자극하고, 상대후보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다양한 방법들도 개발된다. 정치 여론조사의 중요성도 커졌고, 레이건의 등장은 스펙터클의 중요성을 정치 컨설턴트들에게 각인시켰으며, 88년 미 대선은 네거티브 전략의 힘을 보여줬고, 92년 미 대선은 네거티브 전략에 대한 대응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선거운동이 전문화되고 산업화되는 경향은 미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70년대 미국의 정치 컨설턴트 조 나폴리탄의 프랑스 대선캠프 참가를 시작으로 미국식 선거운동은 전세계에 확산됐다. 후보자들의 여론조사와 이미지 메이킹, 홍보 전문가 고용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선거운동은 더 치열하고 혼탁해지고 있고, 선거는 이미지 대결이 돼가고 있다. < 5월 31일 제 2편 : 마케팅이 된 선거운동 > 선거운동은 이제 거대산업이 됐다. 백 년에 걸친 미국식 정치홍보의 발전을 지켜본 각국은 미국을 참고하며 나름의 정치홍보 방식을 개발해냈다. 프랑스의 미테랑은 80년대 중반에 이미 정치홍보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인기관리를 위해 비밀팀을 운영했다. 95년, 폴란드의 젊은 정치인 ‘알렉산드르 크바니에프스키’는 동구권 붕괴의 상징인 바웬사를 누르고 폴란드 대통령에 당선됐다. 성공적인 이미지 메이킹 덕분이었다. 96년엔, 감성적인 선거운동과 여론조작 등을 이용한 옐친은 예상을 뒤엎고 재선에 성공했다. 서유럽 좌파정당들도 경직된 이미지를 벗고 집권에 성공하기 위해 정치홍보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민당은 각각 블레어와 슈뢰더라는 젊은 지도자를 내세우고, 부동층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으로 선거에서 승리한다. 프랑스 사회당은 정치홍보 전문가들의 역할을 무시했다가 선거에서 참패했다. 한편 24시간 뉴스채널이 늘어나며 뉴스수요가 늘어난 미국에서는 클린턴 정부가 언론과 백악관의 관계를 재정립한다. 백악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자신들이 원하는 뉴스거리를 제공했고 기자들은 백악관이 제공한 뉴스를 그대로 전달했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여론조작 방식이 더 대담하다. 기자와 방송국을 매수해 정치인을 홍보하는 기사가 전파를 타게 만드는 것이다. 이젠 전쟁도 지상과 TV화면 두 곳에서 벌어진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의 대의명분을 만들어내는 데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며, 인터넷의 영향력 증대는 미디어 환경을 다시 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정치홍보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새로운 환경에 맞는 정치홍보 기술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목할 만 한 장면들, 인터뷰들> 1. 1차대전 당시 미국의 참전을 긍정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맡아 “전세계 민주주의 수호”라는 개념을 도입했던 정치 홍보의 선구자 에드워드 버네이스(심리학자 프로이드의 조카)는 체코슬로바키아 초대 대통령인 ‘마사리크’의 자문을 맡았다./ 독립 선포하기 직전 마사리크가 당장 독립을 선포하려고 하자 버네이스는 이를 제지한다. 일요일에 독립을 선포해야, 주요신문의 월요일자 1면을 장식한다는 이유였다. 마사리크가 ‘언론을 위해 역사를 만들 수는 없다’고 반대하자, 버네이스는 ‘역사를 만드는 게 언론이다’라고 대답했다. 2. 1960년대 TV토론 정치시대를 연 존 F 케네디의 경우 : 1960년 첫 TV 토론에서 닉슨은 방송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고 분장을 거절했다. 반면에 캘리포니아 유세를 마치고 온 구릿빛 피부의 케네디는 훨씬 차분하고 자신감이 있어 보였으며 마이크 테스트나 카메라 위치까지 파악하는 꼼꼼함을 보인다. 사상 처음으로 7천만 유권자들은 대통령 후보의 토론을 직접 시청했고, 후보들의 이미지는 승패를 갈랐다. # 시드니 블루멘털 / <영원한 선거운동>의 저자 케네디는 생기 있고 냉정해 보였고 / 카메라 위치를 알고있었고, 카메라의 중요성을 이해했죠. / 화면도 잘 받았구요. / # 존 헤이버 / 미 민주당 정치 컨설턴트 흥미롭게도 스튜디오에서 토론을 지켜본 사람들은 대부분 닉슨의 승리를 확신했고, TV로 본 사람들은 케네디의 승리를 확신했죠. / 3. 이미지와 감성에 호소한 선거광고로 승리한 정치인들 - 1964년 미대선 민주당 린든 존슨 VS 공화당 배리 골드워터 : 민주당 대선 캠프는 베트남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펼친 공화당 후보의 극단적인 사상을 비난하며 핵공격의 위험성을 감성적으로 전달하는 광고로 승기를 잡았다. 4. 1996년 보리스 옐친의 대통령 재선 성공 : 대통령 선거 6개월전 옐친의 지지율은 고작 6% 였다. 최고의 정치홍보 전문가들을 고용한 옐친진영은 선거공약 대신 전국유세를 계획했고, 방송사가 좋아할 만한 그림이 나오는 곳에서 유세를 벌였다. / 순회유세가 진행되는 동안 옐친의 선거본부는 TV광고도 끊임없이 내보냈다. / # 알렉세이 볼린 / 옐친의 이미지 메이커 선거공약을 읽어보는 유권자는 없습니다. 공약은 대부분... / 두 페이지나 되지만, 그냥 슬로건과 희망사항을 모아놓은 것뿐이죠. /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TV광고나 후보의 연설에 나오는 내용 이상의 공약을 알고싶어 하지 않습니다. / 그러니까 두 페이지짜리 공약에 힘을 낭비하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죠. / 아무도 읽지 않을 테니까요. /광고전략은 한 마디로 ‘감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거슬로건도 ‘마음으로 투표하세요’였구요. / 감성을 자극하면 / 사실을 제시할 때보다 호소력이 크죠. /선거유세를 계획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건 스펙터클 연출입니다. / 옐친 진영에서 / 언론을 담당했던 친구도, 그림이 좋아야한다는 말을 늘 했죠. / # 존 나폴리탄 /5,60년대 전설적인 선거 컨설턴트 사람을 움직이는 건 감성입니다. 머리에 든 생각이 아니라, 감성이 먼저 사람을 움직이죠. 사실을 제시하지 않고... / 단지 감성만 자극했습니다. 누가 베트남전에서 핵무기 사용을 원하고 누가 원치 않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따로 말할 필요가 없었죠. 이런 식으로 정치인들은 TV라는 미디어를 이용했고... / 시청자들의 무의식을 자극했습니다. / # 보도 홈바흐 / 전 독일 총리슈뢰더의 정치고문 선거전략은 부동층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 핵심 지지층을 겨냥한 선거전략은 나머지 유권자들을 모두 쫓아버리게 되니까요. / 핵심 지지층을 겨냥하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바보 같고, 지독하고, 정치에 무관심한지를 들춰내야 하는데, 그러면 부동층이 떨어져 나갑니다. / 좋은 선거운동은 / 핵심 지지층을 겨냥하지 않아요. 절대 우리를... / 찍지 않을 유권자도 무시합니다. 모든 선거운동은 / 부동층을 겨냥해야죠. 적절한 공약을 내세우면 부동층은 끌려오게 돼있으니까요. / 4. 여론조사와 선거운동 : 1976년 무명의 주지사 카터의 대선승리는 여론조사의 승리였다. # 존 고먼 / 카터 캠프의 여론조사 전문가 매일 밤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전용전화선도 있었죠. 그리고는 매일 아침 애틀랜타에 있던 선거본부에 전화를 걸어 / 부동층이 많은 지역의... 여론 동향을 보고했어요. /매일 실시된 여론조사 덕분에 우리는 각 지역에 맞는 광고를 내보낼 수가 있었죠. 여론의 동향에 따른 대응도 누구보다 빨랐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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