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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대의 초상' 배우 김부선 출연  
작성일 2007-05-14 조회수 17976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전 에로배우가 아니라 그냥 배우예요” EBS『시대의 초상』‘굴레를 벗고 거침없이 전진하라 - 배우 김부선’
‘에로배우, 마약쟁이’등 세상의 오해와 편견에 대해 진솔하게 털어놔 그녀가 말하는‘김부선이 대마초 비범죄화 운동에 앞장서는 이유’ 김부선이 목격한 사법부와 사회 지도층의 거짓과 위선 담긴 에피소드
방송 : 5월 15일(화) 밤 10시 50분 ~ 11시 40분
문의 : 남택진 PD(017-3254630) / 윤성아 작가(019-226-8957)
거친 시대와 삶을 살아낸, 강하고 아름다운 여배우 김부선! ‘시대의 초상’에 처음 털어놓는 놀라운 증언들 80년대초부터 2000년대까지 스크린을 누벼온 여배우, 딸을 훌륭히 길러낸 어머니, 미혼모이며 대마초 흡연 전과자, 또한 대마초 비범죄화 운동을 주도하는 운동가라는 다양한 이름을 가진 김부선, 그녀만큼 오해와 편견, 그리고 환호가 엇갈리는 배우도 드물 것이다. 15일 방송 예정인 EBS 『시대의 초상』의 주인공 김부선은, 이제까지 차마 밝히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솔직한 어조로 털어놓았다. 제작진은 “그동안 숱한 그녀의 기사에서 담지 못했던 김부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며, 5공 정권부터 지금까지 목격한 사법부와 우리 사회 지도층들의 거짓과 위선을 생생한 에피소드와 함께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기도 사랑도 모른채 애마부인3의 히로인이 되다 “배우에도 장르가 있나요? 전 에로배우가 아니라 그냥 배우에요.” 80년대 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광주민주화 운동 이후 민심수습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스포츠와 영화, 섹스를 무기로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려 했고, 에로티시즘 영화들의 무더기 제작, 상영 역시 그 일환이었다. 애마부인 3의 히로인, 염해리(김부선의 예명)로 더 유명하지만, 당시 이미 그녀는 169센티의 훤칠한 키, 서구적인 스타일과 독특한 분위기로 급부상한 패션모델계의 샛별이었다. 한번도 연기수업을 받지 못한채 전격발탁된 애마부인 3. 베드신은커녕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흐느껴 우는 간단한 연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녀 때문에 당시 조감독이었던 강우석 감독은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는 수없이 정인엽 감독은 당시 인기를 끌었던 차탈레 부인 시리즈 테이프를 던져줬고 그걸보고 따라했던 영화 애마부인3는 ‘에로배우’라는 낙인을 남기고 만다. 김부선은 반문한다. “애마부인3의 상대역이었던 이정길, 그리고 수많은 에로티시즘 영화에 나왔던 당대의 여배우들은 그냥 ‘배우’로 불리는데 왜 자신에게만 ‘에로배우’라는 꼬리표를 붙이느냐”고. 마약당국이 연예인 구속에 열올리는 데엔 진짜 이유가 있다 “왜 연예인만 이중삼중으로 처벌하죠?” “국회의원등 지도층은 대마초를 피워도 처벌되지 않는건 정관계 커넥션 때문“ 사람들은 대마초 때문에 수사받는 연예인들의 고개숙인 얼굴은 잘 기억한다. 그러나 대대적인 언론보도와 실형선고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또 그 후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질문조차 던져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김부선은 여배우라 부당하게 겪어야 했던 고통, 이제까지 어둠 속에 갇혀있던 바로 그 진실에 대해 처음 입을 연다. 89년 억울하게 빼앗긴 딸을 찾기 위해 자수를 했던 그녀에게 담당검사는 참기 힘든 조롱을 했다. 충격과 상처가 커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는 담당검사는 14년 후, 변호사가 되어 김부선을 찾아와 충격고백을 한다. 그녀와 같이 기소됐던 국회의원이 풀려났던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녀는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단순흡연자와 대마 소지자까지 구속, 실형을 선고하는 대신 외국 여러 나라들처럼 벌금형 정도로 처벌수위를 낮추거나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가혹한 표적수사의 단골 표적로 잘못된 수사관행의 피해자였던 그녀는, 진실을 더 이상 묻어둘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마초 비범죄화 운동은 ‘인권의 문제다' “대마초 비범죄화 운동을 비난한 동료 연예인에 실망했어요, 응원은 못해줄망정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죠” 미국이 대마를 불법화 한지 50여 년, 박정희 정권의 대대적인 ‘대마초 연예인’ 구속 폭풍 이후 76년 대마관리법이 제정된 지 30년만에 처음으로 대마 비범죄화 투쟁에 나선 사람, 바로 김부선이다. 박찬욱 감독 김동원 감독과 강산에 신해철 등 아낌없이 지지해준 동료들과 성금을 모아준 다음의 팬까페 ‘해리부선’의 회원들을 잊을 수 없다는 그녀. 하지만 대마초로 구속됐던 모 연예인은 그녀에겐 큰 실망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최근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대마초를 끊을 수 있었던 것은 교도소 알몸조사의 수치감 때문'이었고 대마초 비범죄화 주장에 대해 일언지하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것이다. 이렇게 대마초와 관련된 기억은 모조리 지우고 싶어하는 이도 있건만 그녀는 2004년 대마를 마약으로 규정한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심지어 소송비도 자비로 부담하고 항소이유서도 직접 썼던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도 나서지 않는 거친 가시밭길에 나섰던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한 씬을 나와도 기억남는 배우이고 싶다 “고상한 척하지만 위선에 가득찬 특권층 사모님 역할은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애마부인 시절 그녀가 등장하는 씬은 100씬을 넘었다. 그러나 연이은 구속과 소송제기로 출연씬은 두세 씬까지 줄어들기만 했다. 최근엔 출연이 확정되어 언론보도까지 나갔던 미니시리즈 드라마 두 편의 출연이 간부진의 지시로 어이없이 무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생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절망 속에서도 배우이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일어서왔다. 한 씬이 나와도 수십씬 등장한 배우보다 더 강렬하게 관객의 뇌리에 새겨지도록 남몰래 땀흘리며 자신만의 연기를 창조해왔다. 말죽거리 잔혹사와 불새로 화려한 재기 후에는 누드 촬영제안이 왔지만 가차없이 고사해놓고는 연영과 학생들의 워크샵에 무료로 나서는 이가 김부선이다. 상반기 기대작 영화 ‘황진이’에서는 감독에게 새로운 씬을 제안해내 슬픔과 기쁨이 어우러진 소름돋는 연기로 갈채를 받았다. 개봉전이지만, 이례적으로 스탭들을 놀라게 한 문제의 장면이 첫 공개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녀의 존재감, 거침없이 말하고 싸우는 배우 김부선 “지극히 개인적인 게 정치적인 게 아닌가요?” “살아남아서 말할거야. 살아낼 거예요” 모 인터넷 언론와 김부선과의 인터뷰가 네티즌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와 놀라운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녀의 매력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직설화법과 은유법을 오가는 화법, 마치 연기를 하듯 생동감 넘치면서도 진심이 담겨있어 듣는 이를 무섭게 빨아들인다. 그리고 함께 웃고 울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스타일리스트도 없는 시절 영화배우로 데뷔해 지금껏 직접 자신을 코디해왔기에, 이번 인터뷰를 위해 평생 두 번째로 메이크업을 받았다는 이상한 여배우. 상처가 많다보니 오히려 깊은 연기도 가능하고 세상에 할 말도, 할 일도 많다며 활짝 웃는 그녀는 천상 배우다. 그것도 보기 드문, 강하고 아름다운 배우다. 에로배우와 대마초 배우, 그리고 미혼모...대한민국 여성으로서 가장 가혹한 굴레들을 한몸에 짊어지고도 거친 시대를 씩씩하게 걸어온 김부선. 그녀의 진실이 담긴 목소리는 5월 15일 화요일 밤에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주요 인터뷰 발췌 *전두환 파티에 초청을 거절했다? 김 / 86년도, 85년도? 어떤 감독님한테 청와대에 초대 받았는데 갈 수 있냐고 물어봤다. 전두환 파티할 때 갈 수 있냐고. 안 간다고 했어요. 그게 나야. 왜 안 간다고 했는지 몰라. 자존심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싫어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그래요! 그러더라고. 그래서 그 이후에 내가 히로뽕이나 대마초에 구속이 된 걸 보면. / 과연 이게 한 사람의 보복이 아니었을 까도 들어요. 왜냐면 제가 한 사람한테 피해를 주거나 그래서 적발된게 아니라 누군가가 저를 밀고해서 잡혀갔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무관하진 않죠. 상상할 수 있는 충분한 일이에요. 저기 감히 청와대 오라는데 안와? 이놈의 새끼. 넌 나중에 혼낼거야. 하고 뒤에서... * 연예인만 표적 수사되고 국회의원은 대통령 지시로 풀려나는 대마초 수사 김 / 애기아빠 후배가 국회의원이 있었어요. 그 사람. 혐의만 있었다고 하고 구속도 안되고. 내가 진술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완전히 거짓말이고. 저랑 같이 구속된 사람이 그 국회의원 한 사람하고 연루가 됐었나봐요. 그런데 신문에는 김부선이가 대마초 같이 폈다고 진술했다고 하고. 난 그런 조사를 받은 적도 없고. 신문에는 그렇게 나서 그 검사님이 14년 만에 변호사가 돼서 나타났을 때 그것도 따져 물었어요. / 검사가 난 검사야. 영원한 검산데. 그 사람이 하는 소리가 기소를 시켰는데 당시의 법무부 장관이 전화가 와서 봐줘라. 대마초. 봐줘라. 그래서 안됩니다. 기소시키겠습니다. 그래서 기소를 또 시켰데. 그래서 대통령한테 직접 전화가 왔데. 어쩔 수 없데. 이 계급 사회고 조직사회에서. 풀어줬데. 이런저런 회의 때문에 자기는 나왔데. 김부선이 그 전에 구속 시켜가지고, 나라가 시끄러우니까 얼른 이쪽으로 싹 몰아놓고, 또 이쪽에서 탄압하고. 연예인들 대마초 사건은 그런거 아닙니까? 솔직히. 나라가 시끄럽고, 정치적으로 자기가 좀 딸리고, 꿀리고, 난감한 일 있으면 멀쩡한 애들 하나씩 잡아다가 마약쟁이로 둔갑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수사관도 그래요. 2,30년 들이 그래요. 정말 미안하다. 정말 가슴 아파해요. 그리고 정말 가슴 아플 때가 연예인 대마초로 구속 시켜서 쓸쓸하데요. * 일본도로 김부선을 조롱한 검사 사연 김 / 진짜 칼을 갑자기 이렇게 같이 앉다가, 갑자기 높은 테이블 위로 앉습니다. 쑥 앉아서, 이게 칼이면 ‘어이 김부선이 정의의 칼 들었어. 그래 어떻게 해줄까? 정의의 칼 어떻게 해줘?’... 김 / 제가 겪었던 검사들은 그 양반들이 제가 저주해서 그런걸로 아셔야 할 거예요. 남 / 공권력에 의한 피해를 많이 받으신것 같은데... 좀 들려주실 수 있나요? 김 / 제가요, 이 세상에 두 여자한테 이 고백을 했는데요. 살아서는 말 안할 거예요. 한 사람은 지금 너무 불행한 일을 겪고 있는 임수경씨한테 얘기를 했고요, 또 한 사람은... 임수경씨는 징역을 살아본 친구고. 또 한 친구는 파출수도 한번 안 가본 평범한 주부인데. 이만희 극작가 선생님의 사모님한테 제가 말씀을 드렸어요. 언니들이 혹은 수경아 네가 나보다 더 나중에 살면 이걸 언론에 알려주라. 남 / 선생님처럼 솔직하신 분이 말씀을 못하실 정도면... 검사가 왜 그렇게 미운지... 우리가 느낄 수 있을 정도만... 김 / 불행한 일들 많죠. 대한민국 여성들. 이해할 수가 없을 거예요. 싸워야 된다고 합니다. 하는데... 이렇게 생각 할래요. 그 검사가 나를 되게 좋아했나보다. 날 사랑했나보다. 내 팬이었나보다. *어머니는 4.3의 피해자 - 슬픈 가족사 김 / 어머니는 내 첫 남편하고 아들 둘이 있었는데 내 앞에서 순경들한테 처형당했데요. 김 / 내가 우리 어머니 한테 28에 들었나? (처음 들으셨어요?) 몰랐어요. 아무도 몰랐어요. 어머니에 대한 과거를. 그냥 아버지가 첫 남편인줄 알았어요. 아버지는 그 과거를 알고 계셨고. 아버지는 군인이었다가 어머니랑 합치게 되신거고. / 그래도 울지도 못 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매장을 시켰데요. 그래서 항복. 그때부터 전 엄살 안 부렸어요. 그런거구나. 정말 아프면 아 소리도 못하는 구나. 어설프게 아파야, 요 정도 찢어져야 아프지... 정말... 그래서 과연 우리의 어머니들은, 이 땅의. 그걸 들은 나는 뭐고, 그걸 겪은 어머니는 뭐고. 가슴 아파요... *감옥에서 운동권 여대생과의 운명적인 만남, 수배여대생을 숨겨주다 너무 부끄럽더라고. 저들은 조국을 위해서 싸우는데 아는 쾌락을 위해서 괴롭다고. 스타되고 어떻게 해야될지를 몰라서. 그냥 잘나가는 오빠들한테 잘 보여서 어디 돈 많은데 시집이라도 가보려는 생각이 왜 있지 않았겠어요.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리고서 행동했죠. 도와주마. 너희들 어려운일 있음 꼭 연락해라. 김 / 그래서 그 친구가 몇 개월 있다가 권인숙이랑 부천 성고문에서 구속이 돼서... 서울대 여대생들이 화염병을 던지다 수배가 됐는데... 언니 저 몇 개월만 숨겨줄 수 있습니까?... 당장 보내라. 이 시절이 내가 가장 가난했을 때야. 이제 마약하고 사회에서 완전 고립되고 돈도 없고.... 연탄 때는 데였어요... 그래서 내가 그 친구한테... 연탄 때는 덴데 어떡하니... 그랬더니.... 난 지금도 그게 너무 신선한데... 저는 너무 무서워요. 이렇게 따뜻하고 편안한 집에 더 오래있고 싶어 할까봐.... 그들이 그렇게 당당했어요. 매일 저녁에 나가요. 어디가냐고 물으면 홍대에 아르바이트 간데... 먹고 살아야되니까. * 토요일이 밤이 없다 영화제목이 바뀐 사연 1986년작 <토요일은 밤이 없다> 이제야 밝히는 뒷이야기 # 인터뷰 김 / 원작이 ‘거지 파트라’ 에요. 어떻게 된거냐 하면 무용수, 정말 각광받는 대중 예술가가 산업 시대로 오면서 몰락하면서 이 여자가 팔자가 험해가지고 밤무대로 스크립 걸이 된거야. 예술가가, 무용가가. 그래서 사람들은 얘기하길 거지 파트라야 무슨 클레오파트라니? 그래서 거지 파트라가 제목이 됐는데 정부에서 허락을 않해주는 거야. 우리나라에 거지가 없다고. 그 때 속으로 모든 거지들 잡아다 섬으로. 지금 그들 생사도 알 수 없어요. 잘 아실거예요. 그 시절 겪었던 사람들은. 해외에다가 거짓말 해야되니까. 우리나라 잘사는 나라니까 거지도 없고 도둑도 없다는 나라니까. 거지들 다 잡아 가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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