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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대의 초상' 당신들의 미국, 나의 한국 - 인요한  
작성일 2007-06-21 조회수 16744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금발의 순천 촌놈이 건너온 한국사 『시대의 초상』당신들의 미국, 나의 한국 - 인요한
반세기 동안 한국인, 한국사와 함께 해온 인요한氏 출연 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군 기자회견 통역 97년 결핵 퇴치 사업 위해 북한 방문
방송 : 7월 3일(화) 밤 10시 50분 ~ 11시 40분
담당 : 김훈석 PD(526-2711)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인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나는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란 순천 촌놈입니다" 세브란스 병원 외국인 진료소 소장 인요한. 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모두 놀란다. 190cm의 큰 키와 육중한 몸집에 놀라고, 푸른 눈에 금발의 사내가 내뱉는 질퍽한 전라도 사투리에 놀란다. 본래 인요한의 이름은 린튼 존 (Linton John). 그는 전라도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미국인이다. 하지만 인요한은 스스로를 '순천 촌놈' 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가 지나온 과거역시 한국사와 함께했다. 80년 5월의 광주를 거쳐, 90년대 북한을 오가며 한국사의 가장 뜨거운 순간을 관통해 온 금발의 사내 인요한.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진정 이 시대의 한국인은 누구인가?' 그 답을 찾고자 한다. 80년 5월의 광주.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시민군의 기자 회견을 통역한 인요한 "미국의 중재를 원한다. 이거 제가 전달했어요" 80년 5월 26일. 광주에서는 내 외신 기자와 광주 시민군 사이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기자 회견이 열렸다. 논밭을 지나 광주로 온 외신 기자들은 시민군과 인터뷰를 했고, 그 소식은 곧 세계 곳곳에 퍼졌다. 이 기자 회견이 가능했던 건, 당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1학년생였던 인요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어와 한국말로 외국 통신사와 시민군의 기자 회견을 통역했다. 단 하루였던 광주에서의 시간은 인요한의 인생을 흔들어 놓았다. 미국 대사관은 한국을 떠나라는 명령을 통지했고, 2년여 동안 중앙 정보부의 감시를 받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떠나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인요한은 한국을 선택했다. 그리고 외국인 신분으로는 최초로 대학생 병영훈련인 '문무대'에 입소하게 된다. 이제, 금발의 인요한이 건너 온 숨겨진 한국사의 순간으로 돌아가보자. 97년 1월. 북한 압록강변에 선 인요한 "조선 말 잘 하시네요?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그 웃음에 힘을 얻어서 평양을 향해 갔죠" 북한과 남한이 지금처럼 왕래하지 못하던 97년. 인요한은 북한 곳곳을 누비며 북한 사람들을 만났다. 인요한의 가족이 설립한 북한 지원 단체인 '유진벨 재단'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결핵 퇴치 사업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인요한은 외부인에게 좀처럼 개방되지 않는 북한 곳곳을 누비며 북한 의료 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인요한이 만난 북한은 어떤 곳일까? 아침에 두만강을 보고, 점심때 백두산 보고, 저녁에 압록강을 보았던 인요한의 북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1960년 전라도 순천에서 2007년 서울 까지 "북한에서는 CIA. 남한에서는 빨갱이. 미국에서는 북한에서는 핵무기 만들고 남한에서는 밤낮 반미 시위하는 한국 너는 도대체 왜 한국인들하고 사느냐고 물었을 때, 무인도에 가고 싶었죠." 인요한은 인터뷰 중간중간 특유의 유머와 사투리로 웃음을 선사하였다. 질퍽한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놓은 60년대 어린 시절, 동시 상영장에 다니던 70년대, 양키라 불리던 80년 대학가 생활 등 잃어버린 한국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단고기를 좋아하며 순천을 예찬하던 촌놈 인요한의 유쾌한 이야기. 그러나 그의 웃음속엔 금발인 한국인으로 살아야했던 아픔이 숨겨져 있었다. '한국 말 잘하는 백인'으로만 취급하는 사람들 속에서 인요한이 겪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어보자. 2007년 EBS 스튜디오 "북한에서 '스파이다~' 하면 괘씸하죠! 하지만 도와야죠! 딜레마입니다" "안해! 안해! 노래 안해뀉 하지만 저렇게 높게 부를 자신은 없고뀉." 인요한은 천상 이야기꾼이었다. 병원에서는 하얀 가운을 걸치고 환자를 돌보는 근엄한 의사이지만, 병원 밖에서는 사람 좋아하는 넉넉한 아저씨였다. 노래를 멋드러지게 부를 줄도 알고,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때론 언론에 분노하고, 때론 북한과 남한 정부에 일침을 놓으며 속마음도 털어놓을 줄 아는 호탕한 사람이었다. 이제 인요한이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 땅에서 자라고, 한국에서 일생을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국인으로선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선택한 삶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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