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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큐 10' 마리 앙투아네트  
작성일 2007-07-16 조회수 17482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파란만장한 삶 『 다큐 10 』마리 앙투아네트 2005년 WGBH 제작, 미국 PBS 방송
-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루이 16세의 왕비‘마리 앙투아네트’의 삶 조명 - 당시의 기록과 전문가들의 인터뷰, 재연으로 구성
방송 : 7월 19일(목), 20일(금) 밤 9시 50분
기획 : 이유자 PD(글로벌팀, 526-2568) 우리말 연출 : 정애진 PD(글로벌팀, 526-2585, 018-395-0417)
프랑스 절대왕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화려한 삶을 살다가 혁명으로 인해 단두대에 오른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 궁전에서 지저분한 감옥까지, 그녀의 삶은 양극단을 오갔고, 그녀에 대한 평가 역시 사랑스런 여인과 욕망에 눈먼 괴물, 간교한 책략가와 멍청이, 순진한 여자와 매춘부로 극과 극이다. EBS 『다큐10』은 2편에 걸쳐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조명한다. 2005년 WGBH 제작, PBS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로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재연, 당시의 기록 등을 통해 그녀의 삶에 접근한다. 1부 ‘왕비가 되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출생과 루이 16세와의 결혼까지 과정과 이후 결혼 초기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2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프랑스에서 단두대에 오른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다큐10 - 마리 앙투아네트 부제: 왕비가 되다 원제: MARIE ANTOINETTE 방송일: 2007년 7월 19일 (목) 밤 9시 50분 마리 앙투아네트는 175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의 여제였고, 16명의 아이를 낳으며 왕위계승 전쟁을 치르고 강력한 군대를 키워낸 여장부였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빈을 떠난 건 14세 때였다. 프랑스와 동맹을 맺기로 한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랑스 왕세자와 막내딸의 정략결혼을 추진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후 루이 16세가 되는 왕세자와 결혼한다. 왕세자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었고, 성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신혼 초기에 둘의 부부관계는 원만하지 못했고,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는 도박과 사치에 빠진다. 1775년 마리 앙투아네트의 남편 루이 16세는 왕위에 오르고 78년에는 맏딸 마리 테레즈가 태어난다.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티 트리아농’이란 이름의 사저에 틀어박히고, 이곳은 온갖 스캔들의 진원지가 된다. 흉년과 미국 독립전쟁 지원으로 인한 재정파탄 등으로 백성들의 불만은 높아갔고, 프랑스인들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생각한다. 희대의 사기사건인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에도 휘말리며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원성은 높아가고, 프랑스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간다. 다큐10 - 마리 앙투아네트 부제: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원제: MARIE ANTOINETTE 방송일: 2007년 7월 20일 (금) 밤 9시 50분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으로 체면을 구긴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소책자와 풍자만화의 공격을 받는다. 프랑스는 재정파탄을 앞두고 있었고, 백성들은 굶주렸다. 루이 16세는 재정개혁에 반대하는 귀족들을 꺾기 위해 170여 년 만에 삼부회를 소집했지만, 제3계급은 국민의회를 선포하고 귀족과 사제계급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을 제정하려 한다. 입헌군주제 국가로 프랑스를 바꾸려고 한 것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국왕을 부추겨 파리와 베르사유 사이에 병력을 배치시켰고, 파리가 군대에 점령당할 것을 두려워한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혁명을 일으킨다. 3개월 후, 빵을 달라고 요구하는 폭도들이 베르사유 궁전을 습격했다. 겨우 목숨을 건진 국왕부부는 베르사유에서 쫓겨났고, 파리의 튈르리 궁전에 유폐된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왕족의 탈출계획을 세우고 감행했지만, 국경에 닿기 전 왕족들은 발각됐고, 백성들의 조롱 속에서 파리로 돌아온다. 얼마 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에 들어간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의 패배를 원했고, 군사기밀을 오스트리아로 빼돌렸다. 튈르리 궁에 살던 왕족들은 파리 한가운데의 탕플탑에 갇혔고, 1793년 루이 16세는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된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같은 해 처형됐지만, 그녀는 재판과 처형 과정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누구보다 행복한 소녀시절을 보내다 고통을 겪으며 내면적인 성숙을 이루지만, 사랑하는 모든 것을 빼앗긴 마리 앙투아네트 인생은 국가와 개인의 비극이었다. 그녀는 프랑스가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정으로 차분히 변화하는 것을 막았고, 이로 인해 자신을 포함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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