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은희경의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주체적이지 못한 선택과, 책임지고 싶지 않은 의무, 그리고 강요당하는 명백히 도덕적인 사랑...
예민한 감각과 날렵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을 써온 베스트셀러 작가 은희경의 2001년 작품.
<인 마이 라이프>, <멍>, <행복한 사람은...> 등에서 ''부도덕한 사랑'' 속에 은폐된 여성의 욕망에 대해 꾸준히 말해온 은희경이,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으로 삶을 이해해 가는 한 여성을 소개한다.
방송일 : 2003년 12월 10일 수요일 오후 10 : 50 - 11 : 30
연출 : 백경석 PD (526-2687, 017-277-3789)
● 그의 정부인 ''나'', 그리고 아버지의 정부...
3년 전 나는 29살이었다. 디자인실에 다니며 하루하루가 똑같은 나에게 ''그''가 다가왔다. 디자인실 강선배의 모임에 따라갔다가 만나게 된 ''그''는 나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은행 간부였다. 유부남인 ''그''는 아내와 원하는 삶이 다른 것 같았다. 하지만 독점욕을 두려워하는 나는, 그의 삶에서 그의 아내를 몰아내거나 그를 내 옆에 더 많이 두려고 잡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와의 만남을 지속한다. 임신 중절 수술을 한 날, ''그''는 같은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던 날부터 ''나''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봤다면서 나에게 청혼한다. ''나''는 그에게 대답하지 않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결혼에 대해 약간의 흥분을 느낀다. ''그''에게서 청혼을 받은 다음 날, 지방에 사는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흐느끼던 엄마는, 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이혼하자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예전부터 엄마와 아버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린 나조차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잔소리가 심했던 엄마에게 아버지는 한결같은 무관심을 보여줬었다. ''나''는 이제야 자유롭게 살아보겠다는 아버지 편을 들다가, 아버지의 정부를 향한 엄마의 심한 악다구니를 듣는다. 순간 나는 산부인과에서 받은 약봉지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나''는 아버지의 정부를 만나 다그치는 꿈을 꾼다. 하지만 호텔에서 만난 그 사람은, ''아버지의 정부''가 아니라 ''그''의 아내였다. 엄마와의 계속되는 통화는 유부남과 사귀고 있는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자각시켜 주었다. ''나''는 청혼한 이후로 나에게 더 신경을 쓰고 그만큼 간섭을 하게 된 그에게 필요이상으로 날카롭게 반응하게 된다. 아버지는 재산을 정리할 생각이라며, 결혼자금으로든 유학자금으로든 쓰라고 거금을 주신다. 그날 강선배의 환영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 있던 나는, 별 것 아닌 다른 사람의 시비에 끼어 들어 술집을 싸움판으로 만들어놓는다. 술집을 빠져 나오고 있던 ''나''에게는, 등뒤에서 부르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아닌,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엄마의 전화벨소리만 들린다. 한편 ''그''는 나의 생일에 반지가 든 작은 상자를 내밀며 자신의 아내와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을 하는데...
● 은희경
1959년 전북 고창 출생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이중주'' 당선 1995년 <새의 선물>로 문학동네소설상 수상 1997년 동서문학상 수상 1998년 ''아내의 상자''로 이상문학상 수상
·그것은 꿈이었을까 (2003, 현대문학) ·서른 살의 강 (2003, 문학동네) ·상속 (2002, 문학과지성사)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2001, 소리공화국) ·마이너리그 (2001, 창작과 비평) ·내가 살았던 집 (2000, 개미)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2000, 창작과 비평)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1998, 문학동네) ·타인에게 말걸기 (1996, 문학동네) ·새의 선물 (1995,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