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1 다큐 영화 길 위의 인생

매리설산, 마방 엄마

 

* 방송일시: 2015년 12월 1일 (화) 밤 10시 45분

 

매리설산 자락 깊숙이 위치한 위뻥마을은 차가 다닐 수 없다.

이쉬치리는 위뻥마을에서 순례자와 관광객을 태우는 일을 한다. 손님을 태운 나귀를 끌고 비탈길도 오르고, 절벽길도 걷고, 내리막길도 가며 4대째 위뻥마을에서 마방을 하고 있다.

오래 전 어머니의 길이었던 고갯길은 십 오년이 흐른 오늘 이쉬치리씨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넘는다. 룽따를 흔드는 긴 바람이 자신의 숙명을 읽어주는 것만 같아 그녀는 오늘도 묵묵히 길을 걷지만 이쉬치리씨는 “아이들에게 만큼은 마방의 길을 걷게 하지 않을 겁니다” 라며 단 하나의 소원을 바람이 실어 보낸다.

 

위뻥 마을의 마방, 이쉬취리

이쉬취리(35)씨는 오늘도 그녀의 뒤를 따르는 네 마리의 노새와 길을 걷는다.

티베트 불교의 성지인 매리설산을 마주하기 위해 찾아오는 순례자나 여행객을 태우는 것이 마방, 이쉬취리씨의 일이다. 성산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닿고자 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까지 태우고 이쉬취리씨는 지난 십오 년간, 같은 길을 수백 번 오르내렸다. 차가 다닐 수 없는 설산 자락 깊은 골짜기 마을, 위뻥의 교통수단은 노새뿐이기에 마방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해가 질 때까지 걸음을 멈출 수 없는 날도 있고, 달걀과 물로 배를 채워야 하는 날도 허다하지만 노새를 먼저 생각하는 천상 마방이다. 매일 아침, 가장 좋은 보리를 말리고 볶아 노새에게 먹이고 걸음 가벼울 날 없는 노새가 아프지는 않을까 매일 그 등을 쓰다듬고 어루만져준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그녀는 절대 노새를 타는 법이 없다. “온종일 등에 짐과 사람을 업고 다니는데 얼마나 힘들겠어요. 노새들이 안쓰럽고 미안해서 탈 수 없어요.”

 

어머니에게서 딸로 대물림 되는 삶

이취취리씨의 어머니도 마방이었다.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해 마방 일을 했다. 어머니는 험난한 길을 걷고 또 걸어 삼남매 키워냈다. 단 한 번도 위뻥마을을 떠나본 적 없는 이쉬취리씨가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어머니를 따라 마방 길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방 일을 물려받은 지 십 오년이 지나 어머니의 삶은 마치 숙명처럼 딸에게 대물림 됐다. 이쉬취리씨는 오래전 남편을 잃고 두 아이를 홀로 키운다. 영원히 녹지 않는 설산의 눈처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난의 대물림인 것이다.

이쉬취리씨의 단 하나의 소원은 고된 삶의 대물림을 끝내는 것이다. 자식만큼은 공부를 시키고 싶은 글 모르는 엄마 이쉬취리씨는 12살 아들과 8살 딸을 도시의 학교로 보내고 홀로 마을에 남아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찾아오는 그리움과 고독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견뎌낸다.

그녀는 설산 자락을 따라 부는 칼바람도 두렵지 않은 악착같은 엄마다. 주말마다 아이들을 보러가는 길은 꼬박 하루가 걸리지만 이쉬취리씨에게 그 길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길이다. 다리 건너 흙길 지나고, 비탈길 지나 만나는 아이들의 웃음은 고단함마저 잊게 한다.

 

변하는 위뻥, 사라지는 마방의 길

최근 위뻥 마을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흙길이었던 마을 골목마다 시멘트가 덮이고 밀려드는 신식건물에 전통가옥도 몇 채 남지 않았다. 이쉬취리씨는 할아버지가, 어머니가 노새를 몰고 다녔던 길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을 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살기 위해, 자식들 위해 선택한 마방의 길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 이쉬취리씨는 알 수 없다.

“지금처럼 마을이 빠르게 변한다면 마방이 사라질지도 모르겠어요.”

오랜 시간 동안 마방의 역할이 조금씩 변해 온 것처럼 지금 위뻥 마을은 또 다른 변화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노새와 함께 걷는 것이 자식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위뻥의 마지막 마방일지도 모르는 그녀는 오늘도 길을 걷는다.

 

*관련 사진은 EBS 홈페이지-온에어-오늘의 TV 섹션, 해당 방송 날짜에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