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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똘레랑스'3.1절특집-'조선적을 아십니까  
작성일 2006-02-24 조회수 5648
프로그램 정보 방송일자
3.1절 특집“조선적을 아십니까?” EBS『똘레랑스』‘동포사회의 외톨이’ 조선적 조명
방송 : 3월 2일, 9일(목) 밤 11시 5분 ~ 11시 55분
문의 : 김병수 PD(526-2286)
○ "조선적을 아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의 "조선족"을 떠올린다. '조선적 또는 조선적자'란 일본에 거주하는 60만 재일 동포 중,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고 '한국' 국적도 선택하지 않은 채 <조선>이라는 기호를 자신의 출신지로 삼은 재일 동포를 이르는 말이다. 한류 열풍과 한일간의 단기비자 면제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한,일간의 왕래가 빈번해진 요즘 일본인들은 쉽게 한국에 입국해도 재일 조선적들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입국이 허락된다. 현행법상 그들은 남북교류협력법과 국가보안법에 의해 북한 국적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조선적>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재일동포는 약 10여만. 남과 북,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무국적자로서, 한국의 재외동포법상에서도 동포로 인정받지 못한 유일한 해외동포로 존재하고 있다. EBS <똘레랑스>에서는 3.1절을 맞아 동포사회의 외톨이 <재일 조선적>에 대해 오는 3월 2일과 3월 9일 두차례회에 걸쳐 조명한다. 1부 내용 <돌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 한국에서 일본으로 유학가는 학생들이 수천명이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교환학생으로 오는 일본인이 수천명이다. 그러나, 2005년에서야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한국 유학이 허락된 사람들이 있다. 일본 아이치 현에서 고등학교때까지 <조선학교>만을 다녔던 황군. 그는 재일 동포3세로서 온 집안이 조선적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 고교때까지 조총련계 <조선학교>만을 다닌 황군은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지난 2005년 재외국민과 외국인 전형 수시 모집에 합격해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입학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를 <조총련계 북한국적>의 첫 유학생으로 소개했고, 황군의 아버지는 아들을 유학에 대해서 “두 부자가 뜻을 품고 길없는 길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로부터 1년, 겨울방학을 맞아 일본 시즈오카의 집에 돌아온 그는 일년전 희망에 차 있던 의욕에 찬 조선적 젊은이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술로 달래고 있었다. 남북 교류협력법이 발효되고 난 뒤 최초로 <조선적>으로 한국 유학을 간 조선적 청년을 실의에 빠트린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같은 민족이라서 가족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는 그들이 말하는 우리 측에는 속하지 못했다는 그런 소외감을 느꼈어요. 제가 누구인가? 저는 한국 사람도 못되고, 북한 사람도 못되고, 게다가 일본 사람도 못되고, 제가 속한 것이 없거든요."(황군,제일 조선적 3세) ○ 재일 조선적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조선>이라는 기호를 유지해왔는가? 일본 가와사키 시에 위치한 후레아이관에서 운영하는 <도라지 모임>에서 만난 박봉례 할머니(76세,조선적)를 통해 재일 조선인의 역사와 1세대들이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으로 차별받으면서도 꿋꿋이 민족의 춤과 노래를 지켜온 세월 이야기를 들어본다. 또한 죠센징이라는 차별 속에서도 재일 동포들이 어떻게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며 살아왔는지 도쿄 에다가와 학교의 눈물겨운 민족교육의 현실을 살펴보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 시인 이후 조선학교 학생에 대한 폭행과 폭언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에서도 어린 아들을 조선학교에 보내 장래 조국의 축구선수로 키우고자 노력하는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박승혁군(6학년, 조선적)의 부모를 만나본다. ------------------------------------------------------------------------------------------------------------------ 2부 내용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 후 60년> ○ 한일 합방이후부터 1945년 패전전까지 강제 징용 또는 연행으로 인해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은 약 200만명. 해방이 되자 그중 64만명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정부의 규제의 의해 재일 동포들이 고향으로 들고 올수 있는 돈은 고작 1천엔. 일본에 자식이 있거나 재산이 있었던 다수의 재일동포들은 귀국선을 타지 못하거나, 고향에 돌아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렇게 해서 일본에 남았던 60만명이 오늘날 재일동포들의 출밤점이 되었고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재일 동포들의 98%가 남한이 고향이고, 2%만이 북한이다. ○ 해방 60년이 지난 지금,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여전히 한국인의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지만 현실에서 부산항은 재일 동포를 향해 열려져 있지 않으며, 재일 <조선적>들을 내 형제로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례1 - 고국은 결혼해도 부부가 아니랍니다 - 리동일씨(재일동포 3세,조선적) 일본에서 회사를 다니는 재일 동포 3세인 리동일씨(조선적)는 지난해 12월 일본에 유학온 한국 여성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혼인신고를 마치고 정식 부부로 인정됐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부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리동일씨가 남북 교류협력법에 의해 <북한주민>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갓집이 있는 대구를 방문할때마다 그는 영사관으로부터 "한국"국적으로 전환을 하라는 강요를 받고, <국적을 전환하지 않는 이유>를 작성해야 한다. 정식 여권이 발급되지 않아, 비자 기간이 짧아 매번 갱신해야 하는 임시 여행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며 일본 당국으로부터 재입국 허가증이 나오지 않으면 되돌아갈 수도 없다. 리동일씨는 대구에 처가가 있고, 제주도에 친척들이 살고 있는데, 같이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례2 - 한국적으로 바꿔도 여전히 권리 사각지대 - 조경희씨(재일동포 3세, 한국적) 재일 조선적 3세였던 조경희씨는 지난 2003년 한국인 청년과 결혼을 하면서 조선적에서 한국적으로 국적을 바꿨다. 그러나 한국적으로 바꾸어도 그에게는 국민의 권리는 없다. 국가가 만들어준 거소증으로는 핸드폰도 가입할 수 없고 인터넷 가입도 어렵다. 선거권도 없다. “조선에서 국적을 한국으로 바꾼다고 달라진 게 뭡니까? 이건 사상전향일 뿐이에요.” (조경희,한국적 재일동포 3세) ○ <조선적을 아십니까?(제2부)-돌아와요 부산항에, 그후 60년>에서는 2002년 이후 한국과 일본의 자유로운 왕래 속에서 한국인과 결혼 한 재일 조선적들이 겪는 제도적, 법적 어려움과 문화적, 역사적 관점의 차이를 조명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대안 사례로 일본 오사카에 본부를 두고, 과거 분단의 논리였던 총련과 민단의 이분법에 구애받지 않고, 한반도에 뿌리를 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동포로 받아들이는 재일 코리안 청년연합(KEY)의 활동과, 한국 사회에서 조선적들의 자유왕래와 법적 지위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한국의 재외동포 청년연합(KIN)의 활동을 소개한다.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 없이 재일 조선적의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며 두팔을 걷어 붙이고 조선적들의 인권개선과 차별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 가와사키 市의 공무원인 오다기리씨를 소개한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 유학원에서 근무하는 조선족 출신 김화순씨와 직장 동료들을 통해 성장과정과 문화가 서로 다른 조선적과 한국인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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